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가히‘국민시’라 불러도 좋으리만큼 널리 애송되고 있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시의 강조점은‘꽃’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부르고, 또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이렇듯 의미가 대단히 심장한 일입니다.

  우리집 큰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연세 많으신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 이름을 모르시고 부르실 때마다

 “어이, 거시기 빨간 옷!”

하신다며 무척이나 속상해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우리 부부도 덩달아 몹시 속이 상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의 시작입니다. 이름을 아는 일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의 출발입니다.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그 순간 벌써 사랑은 시작되고, 그는 내게로 와 아주 의미심장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북을, 북녘의 사회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국가의 이름을 포함해 얼마나 그들의 이름을 잘 못 부르고 있습니까? 아니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라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있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