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혼자서 강원도 오대산 자락의 진고개에 오른 일이 있습니다. 해발 965미터나 되는 높은 고개입니다.

 정상에 산장이 있다는 정보만 믿고 밤늦게 찾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산장은 없었습니다.

아니 있기는 있었으나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꼼짝없이 첩첩산중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산장 추녀 밑에 자리잡고 누웠으나 무서워 잠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웬 산짐승들은 그리도 많던지, 예서 제서 고라니 짖는 소리, 부엉이 우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평소엔 아주 낭만스럽게 들리던 소쩍새 소리조차 괴기스러울 뿐이고, 철대문 여는 소리를 내는 호랑지빠귀 소리는 ‘귀신울음소리가 저럴까’ 싶었습니다. 

   아아,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그 사람들 깃들여 사는 문명이 그리웠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고자 손전화를 내어 가족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잠시 기쁘고 마음이 놓였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멀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그리도 큰 위안이 될 줄이야.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속세를 떠나 어쩌구, 문명을 피해 어쩌구, 그건 다 거짓말이고 허세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소리 왁자한 저잣거리가, 오색불빛 현란한 도회의 거리가 그 때처럼 절실하게 그리웠던 적은 없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채 아직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고갯길을 달려 내려와 사람들 속에 묻혔습니다.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일거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 귀한 줄 아는 일이 평화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 진리가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