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13일, 일요일 ,백두산 오르는 날이다. 이 날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새벽 세시부터 잠이 깨었다. 순안을 떠난 비행기로 삼지연 공항에 내리니, 이곳 역시 대단한 환영이었다. 여성 한 분이 뛰어 나와 들꽃 한줌을 쥐어준다.

백두산 중턱에 이르니 침엽수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더 이상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그리고 구릉 같은 넓디넓은 고원에 온갖 꽃으로 뒤 덮여 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산 구절초(들국화)며 아주 조그마한 꽃들이 노랑, 보라, 분홍, 흰색, 빨강 등 각색으로 피어있다. 백두산정이 가까이 오면서 “만병초를 꺾지 마세요” 하는 팻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만병초가 그곳에 있음을 알겠다.

 높은 산, 눈 덮인 5월의 눈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꽃을 피운다는 만병초(萬病草), 이름 그대로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만병초, 그렇다 저 얼음장 같은 추위를 뚫고 통일의 꽃을 피워라, 그리고 우리의 마음 골수 깊이 들어있는 분단정신병을 고쳐다오.

백두산 장군봉에서 범민족대회를 마친 우리는 “조국은 하나다!” “조국통일” 을 외치며 통일 노래들을 부르는 가운데 힘찬 백두산 하산이 시작된 것이다. 행진 도중 잠시 쉬는 사이에 나는 구릉 골짜기로 내려가 뒤덮여 있는 많은 꽃들을 종류대로 사진을 찍었다.

 이름 모를 각색 꽃들과 들쭉나무(Blueberry), 만병초를 찍었다. 반만년 말없이 피고 지는 이 들꽃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이념과 정견의 차이로 갈라져 살벌한 세상에 백두산 꽃들을 보노라면 우리 마음을 녹여 주기에 넉넉하다.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과 특히 민족정서의 고움이 이 꽃들로 하여 되살고, 여기서 통일 정서가 창출될 때. 이미 우리의 통일은 이루어진 것이다.

최 종 수 (목사, 야생버섯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