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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미션] 울리케 포페 “15세 때부터 정치적 활동 할 수밖에”
글쓴이 :      날짜 : 07-10-09 14:01     조회 : 1378    
링크 : http://newsmission.com/news/2007/10/09/1462.20247.html (470)

울리케 포페 “15세 때부터 정치적 활동 할 수밖에”
독일 통일운동의 주역 울리케 포페 여사,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만나


‘2007 남북정상회담’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요즈음, 통일과 평화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적용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통일운동의 주역이었던 울리케 포페 여사가 내한해 관심을 끈다.

 
1989년 ‘독일통일을 위한 동서독 중앙원탁회의’를 주도했던 전업주부 사회운동가 울리케 포페. 8일 남북평화재단 주최로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페 여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울리케 포페 여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많은 사람들이, 1989년 베를린에서 나타난 변화는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져 온 평화운동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중 특히 1980년대 초반 서독에서 일어난 대규모 평화운동이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실이다. 당시에는 나토의 미사일 전진배치와 관련, 전 유럽이 평화에 대한 위협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독의 평화운동가들이 직접 동독에 와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동독의 한 목회자가 목사관을 개방하자, 거기에서 ‘휴가 간다’고 핑계대고 모인 사람들이 워크샵 등을 했다.

공산주의 하에서 어떻게 이런 모임이 가능했나.

- 물론 당시 모든 형태의 평화운동은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돼 국가로부터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모임도 도청을 당하고, 심지어 정부의 스파이도 있어 늘 모임에 대해 알리곤 했다. 1992년 동독 비밀경찰의 문서가 공개된 후 스파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북한과 동독을 비교해 볼 수밖에 없는데, 북한의 경우 ‘시민사회의 성장’이 전혀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독의 경우 1983년 거리시위를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언급했다. 그럴 수 있는 틈새가 있었던 건가.


- 1983년 여성징집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시위’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는 ‘시위’의 개념과는 다르다. 당시 동독에선 모든 시위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따라서 여성들이 했던 것은 모월 모일 우체국 앞에 정부에 보낼 편지를 가지고 모이자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자체도 정부에선 심각하게 생각해 비밀경찰이 모임을 해산시킬 정도였다.

물론 동서독과 남북한의 경우 많은 것이 다르다. 동독에선 서독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등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융통성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 이전 동서독 여성운동가들의 공식·비공식 모임이 있었을 것 같다.

- 비공식적 모임은 주로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공식적 모임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포페 여사가 활동했던 1980년대 여성 단체들 내부의 인적 구성은 어떠했나. 주로 엘리트들로 구성돼 있었나?

-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다 제적 당하거나, 나처럼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직업이 없는 경우에 속했다. 또는 직장에 매이지 않는 프리랜서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낮은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았다.

1989년 가을 ‘독립여성단체’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통일 이후까지 사회적 운동 방향을 모색했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이 단체가 발전시켜 온 것은 어떤 것인가. 또한 현재 독일 여성 평화운동에 있어 아젠다는 무엇인가.

- 안타깝게도 이 단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됐다. 또한 현재 비폭력적 갈등해소나, 난민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평화단체들이 여럿 활동하지만, ‘평화운동’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체가 해체된 원인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듣고 싶다.

- 우선 모인 사람들의 정치적 색깔이 너무 다양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공산주의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색채까지,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사람들이 모이면 싸우는 일도 흔했다. 이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했던 그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이념’이 없었던 건 아닌가.

- 동감이다. 개인의 이해관계와 정치색을 넘어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당시는 워낙 중요한 사건들이 발발하고 있던 때였다는 것이다.

한국과는 분단의 원인과 상황 등이 다르지만, 독일이 통일할 때 주변국이나 기득권층의 반발은 없었나

- 독일이 통일하기 위해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영국의 대처 정부와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는 반대했다. 이미 한 차례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 갔던 독일이 다시 통합되면, 평화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일인들도 분단을 2차 대전에 대한 심판으로 여겨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영원히 분단 상태로 있다 해도 크게 반감을 가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통일을 원했다. 그 상황에서 러시아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콜 총리는 통일에 1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런 상황에 따라 통일이 기대치 않게 빨라졌다.

독일 내부에서 통일에 반대한 이들은 당연히 동독의 고위층이었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통일 독일이 이웃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귄터 그라스 등 지식인들 중에는 지켜야 할 이념을 중시해, ‘연방제’를 통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대부분의 서독인은 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 동독 사람들에게 있어 체제 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이나 박탈감 등은 없었나.

- 모든 사회주의 체제가 역사적 오류를 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안 좋은 예를 남겼다고 해서 ‘사회주의’라는 이념 자체가 무력하고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예’라고 한 고르바초프의 말처럼 비록 자본주의와 결합됐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 사회적 변화가 있으면 이득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생기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통일이 안 됐다면 직업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아이들도 졸업을 못했을 것이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동독과 현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쪽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 현재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기회’라는 문제를 본다면 오히려 열악할 수도 있다. 기회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구권 국가와 비교한다면 구(舊)동독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남성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다. 신앙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 나는 처음에는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1980년대 평화운동을 하면서 만나고 사귀게 된 여성 목회자와 교인들로 인해 기독인이 됐다. 이후 신앙은 나에게 이 일을 하는 데 큰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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