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금강산에서 ‘고구려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남북공동 사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선발대로 참여했던 필자는 북측 사람들과 함께 행사준비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과 아울러, 그 속에서 하나됨을 확인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북측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술자리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하나됨을 확인한 것은 말이 같고, 노랫가락이 비슷해서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더욱더 하나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측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북측 노래를 부르려 애썼고, 북측 사람들은 반대로 남측의 노래를 부르려고 애썼다. 노래 하나에도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작은 배려의 마음씨였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있는데, 〈아침이슬〉(김민기 작사·작곡)이 그것이다.
북측 사람들은 남측 사람들을 위해 〈아침이슬〉을 불러 주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았던 탓인지 노래에 담긴 각자의 아픔과 추억이 있는지, 남측 사람들은 북측 사람들이 불러주는 〈아침이슬〉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은 비단 술과 개인사에 얽힌 문제뿐만이 아니라, 금강산이라는 지역에서 북측 사람들의 노래로 〈아침이슬〉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측 사람들에게 〈아침이슬〉이 가지는 의미는 개인사의 어떤 추억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분단 현실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자리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래를 금강산에서, 그것도 북측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으니 감회에 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였고, 함께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불렀다. 뜻하지 않은 북측 사람들의 노래가 남측 사람들에게는 다시금 우리 사회가 지내왔던 과거의 “서러움”과 현재 우리를 규정짓는 분단현실을 뒤돌아보게 했던 것이다.

그 날의 술자리를 통해 통일은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서로를 배려해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통일은 일방의 노래만을 자기만의 흥에 취해 불러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것은 비단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우리의 아픈 과거와 현실 조건을 다시금 생각했던 것처럼, 상대방이 있음으로 해서 내 자신을 성찰적으로 뒤돌아보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상대방의 몸짓 하나에 대결적 의미부여를 했던 과거의 역사를 지나, 이제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과 북 자신의 내부사회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과정’이 통일의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날 술자리에서 서로를 배려했던 노래의 마음씨들이 하나 둘 모여, 하나됨의 열매가 영글어 맺는 날,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를 또 다른 〈아침이슬〉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