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남한 북한: 미국의 진보주의자가 바라본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전망(이하 남한 북한)》의 저자 존 페퍼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0년, 서울의 ‘국제민주연대’라는 시민단체 사무실에서였다.

 

당시 미국친우봉사회(AFSC,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동유럽 및 동아시아 담당 공동대표로, 도쿄에서 거주하면서 남측 NGO들과 갈등 해소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북미 교류를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던 그는 종종 우리나라를 찾아와 여러 가지 문제에 함께 참여하곤 했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전문가나 ‘분석가가 아니라 ‘진보주의적 활동가(Progressive Activist)’라고 불러달라던 그의 첫 인상은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편견으로 사물을 재단하려 드는 대부분의 미국인들과는 달리 그는 끊임없이 묻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북을 세 번, 남을 스물네 차례나 방문하면서 한반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남한 북한》인 것이다.

남과 북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이 책의 의의는 무엇보다 남과 북을 현상만 가지고 분석하고 평가하며 미국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역류(Blowback)》의 저자 찰머스 존슨은 “존 페퍼의 책이 출간되자 북에 대해 퍼뜨리고 있는 부시 정부의 소문들은 이라크에 대한 그들의 보도보다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서 “그의 분석은 가장 신뢰할 만하며 한반도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한 균형 잡힌 기록물이다”라고 평가한다.

존 페퍼 자신도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표는 남과 북에 관해 이해를 돕고 남북의 대미 관계를 조망해보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제1장 ‘한반도의 한’과 2장 ‘평양의 관젼에서 서구에 의한 개방에서부터 일제 식민지, 분단, 6·25전쟁과 같은 한반도의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러한 역사를 설명함에 있어 한반도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미국이나 구 소련, 일본, 중국과 같은 주변국가들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분석하고 서술함으로써 오늘날 남과 북이 이들 나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말해 한반도, 특히 북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미국인들이 ‘정신병자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북의 행동들이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나름의 ‘현실적인 정책’임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존 페퍼는 북이 부시 대통령이 이야기하듯 ‘악마’가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적, 문화적 모형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사회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 정부의 ‘불합리성’은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적 지평에서 보면 좀더 광범위한 모형으로, 최소한의 일관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외국인이 남과 북을 둘러볼 때, 만일 서울을 먼저 방문해서 경제적 교역과 남의 중앙권력의 집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주의 깊게 보게 되면, 평양 여행이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 정부가 전체주의적이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실용주의적이라고 평가하며 북은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더불어 그는 현재의 한반도 위기는 단순히 핵무기에 대한 북의 욕심만으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논리적인 정책으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으며, 이제까지 줄곧 김정일 정권의 붕괴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북과 대립관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존 페퍼는 3장 ‘워싱턴의 관점:미국의 궁극적 시나리오’에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촉진시키기보다 분열과 정복을 기조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남북의 분열과 정복을 노리는 미국

이 같은 인식 때문에 그는 최근 북의 공개적인 핵보유 선언에 대해서도 이를 북의 핵무기 보유와 연결시킬 증거는 아직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북의 핵 발언과 6자회담 무기한 불참 결정은 워싱턴을 놀라게 해 좀더 유화적인 태도를 끌어내기 위한 노림수”라고 판단한다. 덧붙여 북의 핵보유 선언은 북이 변한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면서 “개입정책을 취하면서 북핵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미국 행정부는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4장 ‘포함외교의 세계화: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저자는 북 정권 교체에 대한 미 행정부의 열망과 주한미군 등 한미관계의 모습을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전략 차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가 보기에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전략의 핵심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다. 그것은 군산복합체의 이익일 수도 있고 동아시아 무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목적을 위해 “부시 행정부는 이미 군사화 되어 있는 지역을 무장시키기 위해 지역 분할 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위협하는 독자적인 다자간 안보 시스템이란 것은 없다. 또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킬만한 경제적 동맹 조직도 없다. 동아시아 지역은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분할되었고 미국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위기를 한껏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작금의 북핵문제가 아니더라도 존 페퍼가 보기에 한반도는 지정학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으로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는 북과 미국의 대립은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저자는 5장 ‘평화로 가는 길’에서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양의 정권교체를 겨냥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하루속히 바뀌어야 하고 무엇보다 남북 양국이 독립적으로 민족의 미래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외부적 개입이나 변화라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역사라는 맥락에서 한국민은 아시아 중심부에 뚫려있는 구멍을 메우면서 분할된 동아시아 지역을 새로운 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로 만들 능력이 있다”라면서 남북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재통일을 위한 길로 다시 들어서려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저자가 많은 면에서 한반도에 무지한 이방인, 자신과 같은 미국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책이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에게도 어쩌면 꼭 필요한 책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대한반도 전략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이해와 분석조차도 서구의 틀을 그대로 답습해온 우리 역시 한반도의 역사와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바쁜 번역, 출판 일정 때문인지 오역이나 미흡한 교정교열, 시사용어 번역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점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심지어 한글 표기를 영어에 의존한 경우도 종종 발견되는데, 영어 철자상의 문제로 이 책에 ‘유종애’로 잘못 표기된 재미동포 유정애 박사에게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