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황당한 ‘통일 사기극’

김 노인(신구)은 북에 아내와 딸을 남겨놓고 전쟁 중에 남으로 내려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죽기 전에 고향에 가서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있던 혈육을 한번 만나는 게 그의 마지막 희망. 그에겐 50억의 부동산이 있지만 통일이 되면 상속해주겠다는 기이한 유언장 때문에(통일이 안 되면 통일부에 기부), 두 아들 명석(감우성)과 명규(김수로)는 유산을 사수하기 위해 통일을 연출한다.

마침(?) 다리를 다쳐 김 노인이 집밖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두 아들은 지하실에 어설프게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통일이 되었다는 뉴스부터 시작해 온갖 통일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이후 반상회까지 동원해 ‘통일 시범지구’라는 황당한 설정까지 하고, 결국 평양교예단 공연까지 조작하는 두 아들. 그들의 효심은 끝이 없다.

〈간큰 가족〉은 조금은 독특한 방식의 통일 영화다. 이 영화는 통일과 관련된 이데올로기를 영화의 표면에서 지워버리고, ‘실향민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감상주의에 매달린다.

이 영화는 우리 시대의 통일이라는 것이 국제정치나 경제정책과는 무관하게, 이미지 조작만으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무의식적인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지난 정권에서 통일정책의 주조로 삼았던 ‘햇볕정책’을 연상시킨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이 강렬한 만남은 묘한 방식으로 통일을 경험시켰다. 사람들은 두 정상의 인간적 만남을 통해 통일을 둘러싼 수많은 정파 사이의 갈등과 현실적 어려움 등을 잠시나마 완전히 망각하고, 만남의 장면이 주는 충격과 쾌감에 감상주의적인 ‘통일 당위론’에 젖었던 셈이다.

이러한 ‘통일 이미지’와 ‘진짜 통일’의 혼돈은 〈간큰 가족〉의 테마다. 통일에 목말라 있는 한 노인은 평양교예단이나 옥류관 같은 북의 상징적 이미지만으로도 통일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간암 말기였던 노인은 기적적인 병세 호전을 경험한다).

재미있는 것은, 두 아들과 주변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통일 이미지들이다. 그들은 남쪽의 공중파를 통해 선별되어 방송되었던 북쪽 방송의 장면들을 최대한 모방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간큰 가족〉은 남쪽의 관객들이 미디어를 통해 주입당한 북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셈이며, 그것은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통일이라는 꽤 심각한 화두는 연성화시키고 가끔씩은 희화시킨다.

분단의 뒤켠에서 벌어지는 희비극

하지만 좀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간큰 가족〉은 통일 영화라기보다는 분단 영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대표적인 분단 영화라면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를 들 수 있는데, 이 영화들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부각되는 주제의식은 ‘갈라진 조국’이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비극적 감수성이다.

〈쉬리〉에서 이방희는 연인인 유중원에게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절친한 친구였던 남북의 병사들 또한 급박한 상황에 처하자 자신들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다. 이들 영화가 액션과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 분단이라는 극적 현실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수용했다면,

〈간큰 가족〉은 코미디 장르 속에서 분단 영화의 또 다른 스펙트럼을 전개한다.
이 영화의 비장미는 죽고 죽임이 아닌 속고 속임의 과정 속에 있다. 방북 신청서가 접수되면서 드디어 북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사람은 북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딸이 아니라 처제의 딸이다. 여기서 두 아들은 또 한 번의 사기극을 연출하고, 그녀는 자신이 딸이라며 김 노인에게 다가간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간큰 가족〉은 통일의 관점에서 보면 새빨간 거짓말 같은 희극이지만 분단의 관점에서 보면 눈물 어린  비극이다. 결국 이 영화는 한국이라는 이념적 갈등의 국가 뒤켠에서 벌어지는 희비극인 셈이다. 그리고 이 우화의 웃음과 페이소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단 조국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단절의 역사를 품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