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엔 〈간큰 가족〉, 지난달엔 〈천군〉 그리고 이번 달엔 〈웰컴 투 동막골(이하 동막골)〉.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국내영화계는 한 달 터울로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한 상업영화를 내놓고 있다.

이 영화들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영화라는 픽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의 정치적 상황과 소통한다. 조작된 이미지 전략만으로도 통일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간큰 가족〉은 올해 광복절에 이루어졌던 화상상봉의 감동(?)을 연상시킨다.

핵 무장이라는 정치적 테제를 배경으로 하는  〈천군〉은 독재시대의 정치논리와 맞닿아  있으며, ‘구국의 영웅’ 이순신 또한 그 독재자에 의해  옹립되었다는 사실을 기묘한 방식으로 환기시킨다. 그러면서 언제나 갈등으로 치닫는 북핵문제와 6자회담 또한 떠올리게 한다.

미국이란 존재의 우회적 언급

그렇다면 현재 극장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동막골〉이 건드리고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표면적으로는 강한 휴머니즘을 내세우는 이 영화는,  ‘분단 영화’인 〈간큰 가족〉과 〈천군〉이 간과한 혹은 미진하게 냄새만 풍겼던 ‘미국’이라는 존재를, 55년 전 강원도의 한 지역을 무대로 언급한다.

〈동막골〉의 시작은 시대배경을 설명하는 자막이다. ‘구국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아직 중공군은 내려오지 않은 상황. 인민군은 힘겹게 퇴로를 확보하며 다시 북진중이며, 상좌 리수화(정재영)는 후퇴 속도를 늦추는 부상병들을 거둬가며 패잔병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국방군에게 일격을 당한 후  장 하사(임하룡)와 소년병(류덕환)을 이끌고 더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든다. 한편 국방군 소위 표현철(신하균)은 한강 철교 폭파작전에 참가해 피난민의 남하를 막았다는 죄책감에  탈영한 군인이다.

자살하려던 그는  우연히 문 병장(서재경)을 만나고, 동행은 시작된다. 여차여차하여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산 속 깊은 곳의 동막골.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는, 아니 전쟁의 개념조차 모르는 동막골 사람들에게 인민군과 국방군은 모두 낯선 옷을 입은 낯선 손님일 뿐이었다.

리수화와 표현철의 대립구도로 진행되었다면 〈동막골〉은 심심한 화해의 드라마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동막골에  도착하기 전에, 그곳엔 연합군의 스미스  대위가 비행기 불시착으로 와 있었다.

연합군과 국방군, 국방군과  인민군, 인민군과 연합군의 대립구도와 그 미묘한 역학관계는 〈동막골〉을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으로 만드는 셈인데, 여기서 이 영화는 모든 이념을 무화시키는 존재인 여일(강혜정)이라는 존재를 등장시킨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듯한, 머리에 꽂은 꽃으로 충분히 ‘광인(狂人)’임을 알 수 있는 여일은 순수함의 결정체이며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녀는 치열한 대립의 현장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가로지르고, 소년병은 그녀의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

리수화와 표현철과 스미스가 전쟁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휴머니티를 회복하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여일이라는 캐릭터와 동막골이라는 공간의 무차별적인 평화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쟁의 한가운데였다. 연합군, 아니 미군은 보급로 확보를 위해 동막골 폭격을  결정한다.

평화를 지키는 새로운 연합군

〈동막골〉은 상징적이다. 가상의 공간 동막골은 한국을 상징하며, 그곳에 폭탄을  퍼부으려는 연합군은 침략자다. 이 영화는 남북대립으로 도식화되었던 6·25전쟁을, 순수함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파괴하려는 자의 투쟁으로 그린다. 그러기에 맥아더를 ‘구국의 영웅’으로 표현하는 도입부의 자막은, 영화 후반부에서  거짓으로 판명된다.

특히 수색을 나온  연합군(그 안엔 통역 역할을 하는 한국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이 동막골에서 저지르는 만행은, 현재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 폭력의 근원을 캐는 장면과도 같다. 흐뭇하고 감동적인 ‘전장의 휴머니즘’ 영화처럼 보이는 〈동막골〉은 미국이 한국 현대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의 희비극이다.

물론 스미스 대위라는 ‘선한 미국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논리를  덧붙이긴 하지만, ‘역사적 평가’라는 엄정한 화두와 만나면 〈동막골〉은 가차 없다. 연합군. 그들은 과연 구원자였을까  침략자였을까?

여기서 〈동막골〉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폭격을 유도하며 폭탄들 사이에서 죽어가는 새로운 연합군을, 손을 잡은 리수화와 표현철, 그리고 소년병과 장 하사와 문 병장을 보여준다.

〈간큰 가족〉 〈천군〉 〈동막골〉은 하나같이  감동적이다. 그러면서 이 세  편의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우린 아직도 마음대로 오고갈 수 없고(간큰 가족), 북은 자국 보호 차원으로 핵을 수단화하며(천군),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의 헤게모니는 미국이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동막골).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이젠 이 질문에 대답할 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54호, 민족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