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여! 강경대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강상철 열사여! 조성만 열사여! 이내창 열사여! 신호수 열사여! 최덕수 열사여!…”

아마 1987년, 6월항쟁을 조금 지나서였을 것이다. 지금은 먼 하늘나라에 계신 문익환 목사께서 광주에 오셨을 때 강연 처음에 부르짖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무등산을 온통 뒤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아니 당신의 목소리는 완전히 엑시터시(접신)에 진입한 무녀(巫女)의 통곡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그 목소리와 몸놀림은 마치 전라도 진도 섬 지방에서 행해지는 ‘다시래기’에서 흘러나오는 울부짖음과도 흡사했다. 한 말로 숨이 막히게 하는 전율을 내뿜었다.

너무 억울해서 저승도 가지 못하고 마냥 하늘 곳곳을 떠도는 그런 중음신(中陰神)들을 불러내기라도 하는 듯 당신의 의식행위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길닦이’와 다를 바 없었다. 망자들에게 이 세상 인연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어서 빨리 ‘저승길과 하늘길’로 떠나가라고 길을 닦아주는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진도 지방의 시킴굿! 당신께서는 마치 그것을 무녀 대신에 행하는 박수무당(남자무당)처럼 이한열, 강경대, 홍기일, 강성철, 조성만 열사 등의 이름을 울부짖듯이 불러대는 것이 아니었던가.    

시인이며 통일운동가(통일꾼)인 문익환 목사(1918.6.1∼1994.1.18). 당신께서는 정권과 탐욕에 눈이 어두운 신군부의 1980년 5월의 ‘광주학살’을 질타하면서, 통곡하면서, 결국 이 땅의 거의 모든 정치적 군사적 비극들이 그러했듯이 광주의 비극 또한 ‘분단’에서 비롯됐다고 외쳤다.

이미 그 말씀은 살아생전 당신이 갈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분단구조와 분단매커니즘에 빌붙어서 밥과 목숨을 빌어먹고 영예를 누리는 반통일 세력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리하여 문익환 목사 당신께서는 분단상황을 견디어내고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의 ‘하늘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엔 갖가지 민주화운동 사건에 앞장섰던 문익환 목사.

그 시절부터 당신은 민주화운동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통일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여실히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신이 앞장섰던 노동운동, 인권운동, 민주화운동,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회사업 역시 통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풀이되는 일련의 사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문익환 목사는 당신 친구였던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다간 시인이며 민주화운동가이며 통일운동가이며 하느님의 착한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나라사랑 정신은 새로운 조국건설에의 꿈이 부풀어 타오르기도 했던 8·15해방공간을 넘어서 국토·민족분단 이후 남쪽 땅에 살았던 우리 시대의 문익환 목사의 영혼과 육신 속에서 순결하게 꿈틀거리면서 역사적 생명현상을 지속시켜온 것이다.

생전에도 그렇고 사후에도 그렇지만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밤하늘의 ‘별’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당신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몸과 영혼으로 실천하면서 통일운동에 온몸을 던지고자 했던 빛나는 별이었다.

아니 당신에게 ‘별’은 우리 모두와 함께 어두운 시절 하루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자 했던 ‘통일’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죽어간 모든 것들을 단순히 추상적 생각에서만이 아니라 몸으로, 몸으로, 사랑하고자 했던 문익환 목사. 비록 가시밭길일지언정 하늘과 이 땅의 역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나한테 주어진 길’을 마다 않고 걸어간 ‘통일실천운동갗의 선구자였다.

윤동주 시인이 조국의 광복과 해방을 위하여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저 철조망 너머 ‘또 다른 조국’, 아니 마침내는 ‘하나’가 되고야 말 조국을 향하여 묵묵히 떨리는 가슴으로 걸어간 것이다.

그 첫 전주곡이 바로 이 글의 맨 위에 올려놓은 시 〈꿈을 비는 마음〉이요 다음으로 당신께서 ‘입의 노러가 아닌 ‘몸의 노러로 실천을 보인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이다. 시 전자는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에 발표한 것이고 후자는 평양으로 가기 전 1989년 3월 어느 날 첫새벽에 써서 노래한 것이다.

이 두 시 모두 문익환 목사, 문익환 통일실천운동가, 문익환 통일시인의 모든 것을 가늠할 수 있는 당신의 대표작이다. 당신의 예언처럼 훗날 틀림없이 찾아오고야 말 한반도 통일의 운동사에 길이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절창이다. 특히 비장미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는 남이든 북이든 우리 민족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경청하여야 할 ‘통일시 제1호’이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 이건 진담이라고 //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 가기로 결심했다구 /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 돌아가는 거지 //

아 얼마나 좋을까 /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 한마음 / 그래 그 한마음으로 /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

아 그 한마음으로 /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

뱃속 편한 소리하고 있구만 /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 나부끼는 일이라고 /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 주장하는 일이라고 //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 있다고 생각하나 /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전문

문익환 목사 당신은 〈꿈을 비는 마음〉에서 우리더러 ‘꿈’을 꾸라고 한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그 아픈 ‘진주 같은 꿈’을 꾸어야 ‘내일이 잉태’된다고 노래했다.

‘내일’은 바로 통일의 그 날을 말함에 다름 아닌데 당신께서는 아주 쉽고(아, ‘쉽다’라는 말은 얼마나 정직하고 절실한 것인가) 순정한 방법으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제시하고 있다.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다라 /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 합장을 지내는 꿈, /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될 거라고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의식(儀式)과 창조적 사고를 상징적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

남쪽의 국군과 북쪽의 인민군이 서로 싸우다 죽어서 함께 묻힌 무덤 바로 그 무덤 앞에서 통일을 이루려는 남북전체 구성원들이 “눈물을 글썽이다보면 /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그렇듯 하염없이 순결하고 ‘어처구니없는 꿈’(‘어처구니없는’은 환희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 비로소 현실화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로 그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문익환 목사는 ‘현행법(국가보안법)’을 어기고 평양길에 나선다. 1989년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에 머무르면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갖고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 등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전한다. 4월 2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자격으로 북쪽의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9개항으로 된 ‘4·2공동성명서’를 발표한다.

남북 쌍방은 상치되는 이해와 주장을 넘어 7·4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성명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로 귀환한 즉시 생애에서 다섯 번째로 투옥된 문익환 목사는 무기징역에서 7년을 선고받고 병보석으로 석방돼 1993년 4월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운동을 제창하고, 통일맞이 사무실을 개소한다.

‘새로운 통일운동체’ 결성을 위해 진력하던 중 1994년 1월 18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소년보다 더 청순한 눈동자로 이 땅의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늦봄 문익환 ‘통일꾼’은 그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처럼 결국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련의 ‘거사(擧事)’를 끝내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향후 이 땅 한반도에 꼭 찾아오고야 말 통일의 그 날을 위하여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 그야 하는 수 없지” 하는 각오로 평양을 방문하여 통일의 물꼬를 트고, 나아가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통일대장정 사업에 몸을 바치더니 끝내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우리보다 먼저 ‘다가오는 통일의 그 나라’에 영면한 것이다.

어쩌면 ‘아라비안 나이트’ 이상으로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나지 않을 시인 문익환 목사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실천운동사업의 역정! “역사를 말로서 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역사 그 자체로서 이 땅을 살았던” 그의 생애는 지금도 우리들의 게으른 어깨를 툭툭 치는 그런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을 비는 마음〉과 〈잠꼬대 아닌 잠꼬대〉는 조국이 하나가 되는 그 날까지 우리들 모두가 가슴속에 끌어당기고 아로새겨야 할 통일시의 웅대한, 빛나는 오케스트라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55호. 민족21] 김준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