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뭡니까, 이 후덜덜한 퀄리티의 영상은? 오버스러운 더빙과 음향 효과만 제외하면 웬만한 재패니메이션이나 외국계 작품에 맞먹을 정도”

“작화, 동화, 색지정, 화면 연출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꽤 수준급”

얼마 전 미국의 동영상 전문 커뮤니티 유튜브(youtube)에 올려진 북 애니메이션을 우연히 보게 된 우리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이 동영상은 북 4·26아동영화촬영소가 만든 〈다람이와 고슴도치〉 27부. 최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된 작품이다.

네티즌들의 공통된 반응은 “이거 의외로 고퀼리티다?”라는 한 네티즌의 말에 집약된다. 특히 부드러운 동작 연결은 TV판 일본 애니메이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디즈니식’ 기법으로 자연스러운 동작 구현

비결은 1초를 24프레임 안에 집어넣는 ‘디즈니식’ 풀 애니메이션 기법. 국내의 TV판 애이메이션은 1초를 8∼16프레임으로 잡는 리미티드 기법으로 제작된다.  극장판의 경우에도 리미티드 기법과 풀 애니메이션 기법을 섞어 사용한다. 북 애니메이션이 캐릭터의 움직임이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어느 부분에서는 ‘현란하다’고까지 평가받는 이유다.

북 애니메이션의 ‘실력’은 하루 이틀 새 쌓인 것이 아니다. 1960년 그림영화(셀 애니메이션) 〈금도끼 은도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수천 편의 작품을 제작·방영해 오고 있다. 매년 제작편수는 10∼20편에 달한다.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50부작 〈소년장수〉(1982∼1997)와 지금도 계속해서 제작 중인 〈령리한 너구리〉 〈다람이와 고슴도치〉 등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연속편이 연달아 제작되는 것은 ‘시청자들의 요구가 거세’기 때문. 〈다람이와 고슴도치〉의 경우 4부작으로 시작해 26부작으로 늘어났다가 다시 52부작을 목표로 제작되는 중이다.

TV용 애니메이션은 매일 오후 5시 30분을 전후한 ‘아동방송시간’에 방영된다. 방영시간은 10∼20분 내외. 북측 《통일신보》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간이면 어린이는 물론 온 식구가 애니메이션을 함께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방학 기간이면 하루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회관을 찾아 아동영화 관람에 심취한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북의 애니메이션에는 다람이(다람쥐), 승냥이, 너구리 등 동식물이 자주 등장한다. 전래동화, 우화적 요소도 많이 눈에 띈다. 북 자체의 역사, 정치, 사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애니메이션은 찾기 힘들다.

이는 애니메이션의 대상을 ‘인민학교(현 소학교)’ 학생들로 한정하고 “아동의 나이와 심리적 특성에 맞게 제작해야 하며, 직선적이 아닌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언급에 따른 결과이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법이 소화하지 못하므로 아동영화에서는 혁명전통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애니메이션 제작 방향을 보다 분명히 했다.

▲ 지형영화(컷아웃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꾀있는 개미>의 장면들.

“‘뿔 달린 괴물’은 없다”

이에 따라 북 애니메이션은 협동, 사랑 등 교훈과 과학지식 등을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힘을 쏟는 부분은 어린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는 것. 북 애니메이션을 접해 본 남측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면서도 교육을 함께 담아내는 탄탄한 시나리오 창작 능력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령리한 너구리〉가 대표적인 예. 한 에피소드는 동물팀 대 물고기팀 ‘수구시합’ 형식을 빌려와 고래와 물개가 포유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시합을 하다가 물고기팀에 속한 고래가 동물팀에 속한 물개더러 ‘부정선수’라고 항의를 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진짜 부정선수’는 물개가 아닌 고래. 단순한 과학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낸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방영 중인 생활교육 애니메이션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 시리즈,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전달하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파란 샘물〉 〈소년장수〉 등과 〈금도끼 은도끼〉 〈날개 달린 룡마〉 등 고전설화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물론 신령이 아니라 금붕어가 나무꾼에게 도끼를 전해주는 식으로 북 특유의 사회주의적 역사관, 철학관은 배어 있다.

단 북측 애니메이션에도 없는 것이 있다. 현승태 애니메이션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 〈똘이장군〉처럼 반공을 위해 상대를 ‘뿔 달린 괴물’로 그리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 실장은 “북 애니메이션이 선전선동에만 치중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편견”이라며 있는 그대로 북 애니메이션을 감상해 줄 것을 주문했다.

▲ 인형영화 <겨떡과 황금덩어리>의 장면들.

제작용 소프트웨어 ‘백두산’ 직접 개발

1960년 〈금도끼 은도끼〉가 만들어졌을 때, 인형영화(인형 애니메이션) 〈신기한 복숭아〉도 함께 선보였다. 4년 후 최초의 지형영화(컷아웃 애니메이션) 〈깜장토끼〉도 제작됐다. 남측에서는 그 기간 동안 셀 애니메이션만 제작해왔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각각 인형, 종이인형을 만들어 움직임과 감정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북측의 인형영화와 지형영화도 1초 24프레임의 풀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해 부드러운 동작을 선보인다.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은 특히 지형영화의 수준이 높다고 지적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스탑모션 방식으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움직이는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고, 배경그림에서 깊이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998년 〈셋째의 착한 마음〉에서 부분적으로 컴퓨터그래픽(CG)를 사용한 이래 2002년 첫 풀 CG작업으로 〈환상 속의 세 동무〉를 내놓았다.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SEK STUDIO·이하 SEK)는 이때부터 130명 규모로 CG작품만을 전담하는 ‘콤퓨터3D창작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CG, 3D작업을 시작했다.

북측의 CG, 3D제작실력은 어떨까. 남북합작 3D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 〈뽀롱뽀롱 뽀로로〉를 제작했던 김종세 전 하나로통신 팀장은 “기술서적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자체 학습을 통해 교육내용을 소화하는 등 관계자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열의가 뛰어나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며 “작업물을 구현하는 데서 북측의 기술력은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나로통신의 남북합작사업은 북측의 열의와 실력에 힘입어 2D에서 3D로 애초 구상이 바뀐 경우다.

한편 북측은 2000년부터 ‘초고동화프로그램 백두산’이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 물론 US 애니메이션, TOONS, PEGS 등 해외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도 모두 다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데도” 북측이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 이용하고 있다.

 

“개성에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합작 가능”

현재 북측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SEK에서 제작한다. 평양 보통강구역 경흥동 6000여평 부지의 15층 SEK 청사에는 4500여 명의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영화문학(시나리오)부터 3D작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모두 한 곳에서 작업해 1년에 7000분 분량을 제작할 수 있다. CG, 3D작업이 늘어남에 따라 최근 SEK의 주력은 20∼30대의 젊은 세대가 맡게 됐다. 영화창작을 전공한 대학, 전문대학 졸업생들이다.

SEK(당시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는 1985년 프랑스 콜리마송사와의 첫 합작을 시작으로 외국과 활발한 합작·주문제작을 해 오고 있다. 이탈리아 〈포카혼타스〉 〈사자왕 신바〉, 프랑스 〈코르토 말테즈〉, 독일 〈펠릭스〉 등 35mm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북 애니메이터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개봉된 미국 디즈니사의 〈라이언킹 2∼3부〉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남북합작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을 모았던 〈게으른 고양이 딩가〉 〈뽀롱뽀롱 뽀로로〉 〈왕후심청〉도 북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탄생할 수 있었다.

세 작품 이후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제작은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교정 한국애니메이션제작가협회 전무는 향후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북측 애니메이터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언제든지 합작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북측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은 의심할 바 없이 뛰어나지만 촉박한 마감 스케쥴을 맞추고, 애니메이터와 상시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으로 제작 하청을 주고 있는 업체들의 경우 중국의 인건비가 점점 올라감에 따라 북측과 협력하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피력해 오곤 한다.

이 전무는 “개성에 평양의 애니메이터들이 내려와 상주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치며 개성공단 2단계 분양이 시작되면 이런 구상도 가능해지지 않겠냐고 내다보고 있다. 남북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시장으로 진출해 상까지 받은 〈딩가〉 〈뽀로로〉 〈왕후심청〉의 뒤를 이을 작품이 다시 만들어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북 애니메이션 특별전’이 열리기까지 2년 동안 ‘발로 뛰어’ 엮어낸 기록 1960년 조선만화제작단이 만든 첫 애니메이션 작품 〈금도끼와 은도끼〉를 시작으로 2005년 개봉한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왕후심청〉까지. ‘북 애니메이션 특별전(이하 특별전)’은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시작으로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기관 및 애니메이터, 남북 애니메이션 용어 비교 등 남측에서 궁금해하는 북 애니메이션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다. 북 애니메이션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띄엄띄엄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소식에 정보를 더한 것은 특별전 기획을 담당한 현승태 애니메이션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다. 지난 2년간 자료를 모은 현 실장이 지금까지 본 북 애니메이션만 120여 편에 달한다. 일본 총련을 통해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VCD를 구입하고 프랑스와 북이 합작한 〈꼬르또 말테즈〉는 유럽 출장 때 직접 사오는 식이었다. 120여 편을 기반으로 북 애니메이션을 연도별, 내용별로 분류해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현 실장의 공이었다.  북측과 애니메이션 사업을 담당했던 이들도 만났다. 〈딩가〉 〈뽀로로〉 사업을 담당했던 김종세 전 하나로통신 신사업 태스크포스팀장(현 아이코닉스 이사), 평양정보센터와 협력해 북측 인력을 중국에서 고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정 민족네트워크 대표, 〈왕후심청〉의 감독을 맡은 넬슨 신까지 끈질기게 연락을 취해 북 애니메이션 관련 이야기를 모았다. 특별전에서 〈딩가〉 〈뽀로로〉의 스토리보드, 〈왕후심청〉의 스토리보드 원본까지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2년 동안 ‘발로 뛰어다니며’ 구한 자료들이다. 애니메이션박물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으로 춘천 현암리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76호, 민족21] 이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