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담(가나다 순)= 박경순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 유영구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전영선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지난 2002년부터 영국 출신의 다니엘 고든 감독이 내놓은 세 편의 기록영화, 일명 ‘평양3부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남측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1966년 북이 이룬 월드컵 8강 신화를 오늘날 다시 조명한 〈천리마 축구단〉(2002), 집단체조를 준비하는 소녀들과 그 가족의 모습을 다룬 〈어떤 나라〉(2004) 그리고 1962년 주한미군으로 월북한 후 줄곧 평양 시민으로 살아가는 한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 〈푸른 눈의 평양 시민〉(2006)에 이르기까지 세 편의 영화들은 그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북 사회의 모습을 구석구석 생생히 담아냈다. 다니엘 고든 감독이 이야기했듯,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산국가인 북,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가장 사실적인 방법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식사를 겸해, 편하게 둘러앉은 세 명의 대북 전문가들은 이 평양3부작에 대해 하나같이 “흥미롭다”,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이 영화들이 단지 기록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과연 이 ‘푸른 눈’의 감독은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집단주의 사회를 들여다보는 ‘푸른 눈’의 시선  

이야기는 자연스레 다니엘 고든 감독이 평양3부작을 만들게 된 경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그간의 작품들 속에서 어렴풋이 그 경위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니엘 고든 감독은 스포츠 전문 다큐멘터리스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처음에는 그냥 영국에서 있었던 1966년 8차 월드컵 8강 신화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천리마 축구단〉으로 영화화하면서 자연스레 북의 집단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겠죠. 영화 중간 중간에 집단체조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던 것 같아요. ‘집단주의 사회란 도대체 뭘까’하고 생각하다 집단주의를 가장 극명히 드러내는 집단체조를 소재로 두 번째 영화 <어떤 나라>를 만든 거죠. 그리고 북을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북에 사는 외국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거예요. ‘이 집단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란 어떤 모습일까’하는 점이 궁금했겠죠. 그러다 우연히 ‘드레스녹’이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되고 또 당시 부인을 좇아 일본으로 망명한 ‘젠킨스’사건도 터지게 되고… 그러면서 세 번째로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니가 싶어요.”


이 세 편의 영화 가운데에서 최근작인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 모두들 의견을 같이 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전작들에 비해 그 깊이가 한층 더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후 이야기는 자연스레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비정치적 언어로 사회 체제 다룬 〈푸른 눈의 평양 시민〉

먼저 영화를 본 소감에서부터 각자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 속에는 크게 네 개의 축이 있죠. 말하자면 ‘드레스녹’의 개인사, ‘젠킨스’와의 대비,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증언 그리고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이 그것이에요. 이로 보았을 때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매우 다양한 것 같아요. 또한 ‘한 사회를 선택했을 때 과연 그 선택이 끝까지 갈 수 있는갗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지기도 하죠.”

“체제의 문제를 한 개인의 삶이라는 비정치적인 언어로 잘 표현한 작품 같아요. 삶을 통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장·단점을 드러낸 영화예요. 표면적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실은 두 체제의 극명한 차이가 보이죠. 망명한 후 ‘젠킨스’가 일본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고 또 반면에 ‘드레스녹’이 북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보호’ 받고 있는지 선명히 드러나는 거예요. 두 사회를 차분히 비교할 수 있게 해요.”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에 체제를 결합시켜 이야기한다는 점이 잔잔하게 와 닿았어요. 전편들은 감정의 파장이 컸지만 이 영화는 담담하게 그저 한 인간의 ‘회고담’을 듣는 느낌이었죠. 특별하지만 특이하지는 않은 삶의 과정 속에서 느끼는 것들,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하고 개인적인 상황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요.”


특히, ‘반미를 부르짖는 나라’ 북에서 어떻게 한 미국인이 온전한 시민으로 생활해 갈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인간적으로 과장 없이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했다.
“‘드레스녹’이 적응해 가는 과정 자체에 포함된 갈등, 가령 월북해서도 몇 년간 빈둥거리며 하는 일 없이 지냈다거나 또 소련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냈다거나 하는 것들이 매우 사실적이에요. 십 수년을 거쳐 그 사회를 이해해 가는 과정, 희망 없이 살던 한 인간이 사회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진정 ‘드레스녹’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까지 지켜봐 주는 힘이었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가 정신적 가치를 회복해 간다는 것이 느껴지죠. 남쪽에서는 과연 그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내 스스로는 막상 북에 가서 살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전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 사회 속에서는 내가 역할을 가지고 있는데 북에 가서도 과연 그런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알맞은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보듬는 북의 포용력을 보면서 깊이 공감했어요.”

특히,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드레스녹’이 스스로 북 사회와 맞지 않다고 판단, 자신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제거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꼽았다. 그의 팔에는 ‘US’라는 글씨와 여성의 나체를 형상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했다.
“미군 병사의 모습이란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랬던 사람이 저렇게 변화했다는 것이 중요하죠. 인간적인 성숙미마저 느껴져요.”

“‘드렉스녹’의 말솜씨를 통해 그의 교양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죠. 고교 중퇴자의 화법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워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사람의 ‘내공’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그는 많은 부분 변화, 발전한 셈이죠.”

영화 통해 북 주민들의 일상 엿볼 수 있어

이야기는 차츰 영화 속에 드러난 장면들을 바탕으로 실제의 ‘사실관계’를 짚어나가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대북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비롯한 평양3부작이 북측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공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스녹’이 낚시를 하면서 벌금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북에서도 초망낚시는 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드레스녹’이 이야기하길, 불법이라도 외국인이고 또 배우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고 하니 ‘봐주기도 한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어쩔 때는 ‘벌금 50원’을 내고 낚시를 더 한다고도 하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북 사회도 여지가 있다는 것, 빡빡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낯설면서도 매우 정감 가는 부분이에요.”

“‘드레스녹’의 현 부인이 혼혈 여성이잖아요. 토고 외교관과 조선족 사이의 혼혈이라고 하는 그 여성을 통해 과거 탈북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던 외국인과 북 여성들과의 스캔들이 일정 부분 왜곡되어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죠.” 

“그리고 ‘드레스녹’은 엄밀히 말해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에요. 시민증은 받을 수 있지만 공화국 공민증은 못 받아요. 법적으로 그래요.”

앞서 선보인 두 작품을 통해서도 이러한 북 사회의 면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정을 보면, 계급이 다른데도 사는 환경은 별 차이가 없어요. 방이 두 개, 거실이 하나. 자식들은 방에서, 부모는 거실에서 주로 잠을 자죠. 그것이 평양의 일반 가정집 모습이에요. 특이한 것은 집집마다 부엌에 라디오가 하나씩 달려 있다는 것인데, 소리를 줄일 수는 있어도 끌 수는 없죠. 비상사태나 내부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알리는 역할을 해요. 실제로 평양 초대소에 머물 때 우연히 접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대부분 혁명가요가 나오더라고요.”

“집단체조를 관람할 때는 입장권을 내요. 국가에서 장려하는 공연임에도 수익금이 발생하는 거죠. 그것을 통해 공연에 참가한 이들에게 상품을 주기도 하는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녀는 텔레비전을 받았다고 하잖아요. 텔레비전이나 재봉틀 등 상품이 남으면 서로 간에 사고 팔기를 하면서 이윤을 얻기도 하겠죠.”

“각 가정마다 벽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붙어 있잖아요. 집에 들어오면 초상화를 향해 인사를 하는데, 영화에서 한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서는 짧게 거수경례를 하죠. 직업이 운전기사니까 나름의 방식으로 인사를 한 것일텐데, 그것을 보고 가족들은 대번에 왜 제대로 인사를 안 하느냐고 타박을 주잖아요. 초상화에 인사하는 것 자체가 그 사회에서는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집안의 큰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집단체조에 참가하는 학생들 대여섯 명이 함께 백두산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마치 영화를 위해 연출된 장면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아니고 실제로 북에서는 학교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백두산 답사 기회를 주곤 해요. 공을 세운 군인들이나 예술가, 성과를 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죠.”

“남쪽에서도 분단, 민족문제 다룬 다큐 나왔으면”

한편, 대북 전문가들은 이 영화들을 통해 보여진 북 사회의 면면, 특히 집단주의 체제에 대해 남측 관객들이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것에 대한 의견이 오고 갔다.   

“영화 속 집단체조 장면을 보면 정말 멋있죠.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떻게 집단적으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일단 규율 속에서 훈련을 하게 되면 집단주의라는 것이 교육, 경험적으로 습득이 되게 마련이에요.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 습관화되고 이후에 그것은 내재율로 작용하게 되죠.”
“집단체조 같은 공통의 체험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그것이 바로 삶의 윤리, 규율을 만드니까요.”

끝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이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면서도 여전히 민감한 부분은 피해야 했던 감독의 고충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영화의 흐름상, ‘드레스 녹’이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주석 동상을 참배하는 모습이 등장했어야 함에도 교묘히 지나치는 등이 그러하다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속해 살았던 감독도 이 영화들을 만들면서 조금은 변했을 거예요. 영화와 함께 감독 개인도 진화했을 것이라고 봐요. 이제 그가 네 번째 작품을 무엇으로 만들까가 관건이네요. 개인적으로는 남북관계,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재를 찾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남쪽에서도 하루 빨리 분단의 현주소, 넓게는 민족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79호, 민족21] 박소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