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는 대중문화가 없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자란 세대. 그러나 저자가 생각하는 통일은 정치적 차원의 제도적, 규범적 통합이 아니다. 진정한 통일은 상호 적대적이며 대결적인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것과 함께 문화적 갈등과 이질감을 극복하는 내적 통합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럼, 남북의 문화적 이질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북의 문화도 남쪽과 비슷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나 북 체제의 선전과 선동 일색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어느 것도 북의 문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 아니다. 그냥 ‘아, 북의 문화는 이런 것이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북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무릇 문화란 상대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같다고 보면 같음이 커지고, 다르다고 보면 다름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쪽과 같고도 다른 북쪽 대중문화의 구체적인 현실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이 다소 딱딱한 감이 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짤막한 질문과 답 형식으로 돼 있어 ‘지식검색’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보기에도 지루하지 않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북에도 대중문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 스스로 ‘북한의 대중문화’라는 책 제목을 붙여놓고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아이러니가 북의 대중문화의 특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북에는 ‘대중문화’는 없지만 ‘대중적인 문화’는 있다.

북은 모든 방송과 언론이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당에서 인민에 이르는 일방적인 전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화 자체가 인민의 교양과 학습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기 때문에 다수 인민이 향유하고 공유하는 ‘대중적인 문화’는 있지만 대중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대중소비를 지향하는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나 연예인들도 국가에 소속되어 국가의 창작 방침과 목표에 맞추어 작품을 창작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역시 북의 문화는 국가의 방침을 전달하는 선전 수단에 불과하군” 하는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선입견은 금물. “북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보겠다는 열린 마음 자세를 가질 것”이라는 저자의 주문을 잊지 말자.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같음을 찾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북한 대중문화 이해를 위한 길라잡이’편인 1부에서는 북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미학이론 등의 기초지식을 담고 있다. 질문과 답 형식으로 구성된 ‘북한 대중문화와의 만남’ 편인 2부는 ‘정치와 예술’ ‘영화와 드라마’ ‘교예’ ‘남북문화교류’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있어 독자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골라서 읽어도 무방하다.

이쯤에서 북의 대중문화에 대한 넘쳐나는 우리의 궁금증을 조금 해소시켜보자. 북쪽 영화에서도 키스신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녀의 애정표현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남쪽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 정도가 약하다. 북쪽에서 영화는 대중들에게 호소력과 전파력이 강하다는 특성 때문에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온 장르이다. 따라서 내용도 항일투쟁이나 이념선전을 강조한 것이 많았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해 〈은비녀〉같은 영화에서는 남녀 관계가 대담하게 묘사되었고, 〈도시 처녀 시집와요〉에서는 남녀의 애정신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북쪽 사람들은 데이트 장소로서 영화관을 선호하지 않는다. 남녀가 어두운 영화관에 들어가 데이트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그럼, 북쪽의 연인들은 어디서 데이트를 할까. 평양의 경우 대동강 유보도와 모란봉극장이 애용되는 데이트 장소라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3부는 ‘남북 문화의 흐름과 소통’ 편으로 여기에는 남북 문화교류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제언들이 실려 있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남북교류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하는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북의 대중문화가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동안 저자는 북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다수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이 중 《북한의 문학과 예술》은 북의 문학, 음악, 무용, 연극, 가극, 영화, 교예 등의 분야를 망라한 종합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각 장르의 기초지식과 이론 및 주요 작품까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북의 문학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입문서이다.

우리가 북의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남북의 문화적 통일을 위한 첫 걸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수 자두의 <김밥>이란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너무 피곤해/영화도 나는 멜로 너는 액션/난 피자 너는 순두부/그래도 우린 하나 통하는 게 있어/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이 노래 가사처럼 남북의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 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북 문화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열쇠는 바로 우리들 열린 마음 속에 있다.

                                               [81호. 민족21] 문숙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