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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의 한 대형 마트. 콩나물, 가지, 무, 호박, 고사리 등 각종 야채류가 진열된 코너 아래엔 상품의 원산지가 표기된 흰색 종이테이프가 붙어 있다. 이들 가운데 문득 아주 ‘낯익은’ 두 글자가 눈에 띈다. ‘북한’. ‘국내’나 ‘중국’들 틈에서 ‘북한’산 말린 표고버섯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그 투명한 비닐포장 겉엔 정말이지 ‘원산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표기가 선명하다. 북측 산 버섯이야 이미 ‘고전적인’ 품목이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어쩔 수 없다.


▲ ⓒ민족21

이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 역시 범상치 않다. 특히 저녁 찬거리를 장만하러 들른 주부들은 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속을 찬찬히 뜯어보거나 가격을 살피는 모양이 여간 깐깐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선뜻 자신의 바구니로 버섯을 옮겨 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주부 유영희(61) 씨. “지난 설에 선물로 받은 북측 산 버섯을 먹어 보고 그 뛰어난 맛과 향에 반했다”는 유 씨는 그때부터 “고사리, 호박 할 것 없이 북측 야채를 즐겨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산 품질에 결코 뒤지지 않는 데다 중국산보다 가격도 저렴하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북측 산 없으면 바지락 칼국수 못 판다?!

최근 북측 산을 선호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수요가 늘면 공급이 느는 건 당연지사. 특히 올 초부터 북측 상품의 남측 시장에 대한 공세는 두드러진다. 설 시장을 겨냥한 명절 성 수품들을 중심으로 수입량이 급증한 것. 차례상에 오르는 곶감, 나물, 채소 등 다양한 종류가 북에서 수입됐다.

통일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남북교류협력동향》(2008년 1월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수입된 적이 없었던 곶감이 1월 한 달 새 100톤이나 반입된 데다 저장량 감소로 공급량이 넉넉지 않았던 마늘 역시 지난 해 1월 341톤에서 올해 무려 717톤으로 늘었다. 나물 중에서는 고사리가 지난해 동기 8톤에서 올해 108톤까지, 무가 2.7톤에서 42톤까지 급증했다.

몇몇 성수품만이 아니다. 북측 농산물의 전체 수입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월간 《남북교류협력동향》(2008년 1월호)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8.8%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지난해 가장 많이 수입된 농산물은 송이버섯으로 1047만 달러 어치가 수입돼 밥상에 올랐다.

이와 함께 문어, 오징어, 갯지렁이, 골뱅이, 바지락, 우렁쉥이, 대구, 대게 등의 수산물도 각광을 받았다. 현재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유통되는 바지락의 90%는 북측 산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 산이 없으면 바지락 칼국수를 팔 수 없을 정도”라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역시 농수산물은 모래, 무연탄, 흑연 등의 광산물과 함께 북측 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 국내 생산량과 가격 동향을 고려해 결정되는 ‘연간 농수산물 반입량 제한’ 품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측 산은 여전히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농수산물 중 반입 제한 품목으로 정해진 것은 표고버섯, 호박, 꽃게, 오징어, 고추장 등 총 20여 가지. 모두 남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품목들이다.


▲ 북측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북한몰넷'. 야채류, 주류, 차류, 면류와 같은 식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북한몰넷

이들 북측 산 농수산물이 인기를 끌면서 북측 산을 판매하는 재래시장과 마트 등의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이고 ‘온라인’상의 북 상품 전문 쇼핑몰도 덩달아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북한상품’을 치면 벌써 수 십여 개의 사이트가 뜬다. 그 중 한 곳이 지난 2004년 오픈 한 ‘북한몰넷’.

야채류, 주류, 차류, 면류 등의 식품과 화장품 등의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북한몰넷’의 한 관계자는 예나 지금이나 식품류의 판매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예전과 달라진 점으로 “과거에는 선물용 구매가 많았다면 최근엔 직접 이용을 위한 구매가 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남측 소비자들도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닌 ‘품질’로 북측 산에 접근하고 있는 셈. 하지만 남측의 수요는 큰 폭으로 늘고 있는 데 비해 북측 현지 생산량에 다소 한계가 있는 게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판촉용 라이터에서 도로청소차까지

남북경협이 활성화됨에 따라 북측 산의 품목은 보다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 농수산물과 광산물 등 ‘고전적인’ 품목에서 섬유, 가전제품, 주방용품, 의료기, 판촉물 등 신식 생활용품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가장 먼저 남측 시장을 주름잡은 것은 역시 일회용 라이터. 판촉물로 쓰이는 일회용 저가 라이터의 경우 북측 산이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산을 밀어내고 시장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런 품목은 가격이 관건인 만큼 무관세로 들어오는 북측 산이 자연히 경쟁력 있을 수밖에.

북측에서 생산된 의류(섬유) 역시 라이터와 같이 얼굴이 많이 알려진 품목에 속한다. 북측 산 셔츠나 바지가 할인점 등에 납품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다만 소비자들이 그것이 북측 산인지 모르고 사서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이와 관련, 최근 (주)쌍방울이 북측 나진·선봉 지구에서 생산해 시판하며 화제를 모은 내의 ‘금강산 땀받이’는 현재 시중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산에 비해 바느질이 깔끔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후문.

이처럼 라이터와 의류로 대표되던 북측 산 생활용품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종목을 가리지 않고 있다. 올 초 세간의 관심을 모은 북측 산 도로청소차만 해도 그렇다. 북에서 생산된 도로청소차가 남녘 땅 곳곳을 누비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측 산 도로청소차가 남측에서 이용되는 걸 아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 “정말 그런 게 있느냐”는 반응들.

도로청소차, 불도저, 준설선 등의 중장비뿐만이 아니다. 적은 양이긴 하지만 치석제거기, 검진대, 위내시경, 복막경 등의 의료기기나 초음파 두께 측정기, 발광 다이오드단자, 송수신기기, 광섬유케이블 등의 첨단 전자제품도 벌써 북 수입 품목에 올라 있다. 이 외에도 소소하게는 화운데이션(화장품), 양말, 구두, 침구, 연필, 전구 등 셀 수 없이 많은 품목들이 있다.


▲ 온라인 상의 한 북측 상품 전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북측 미술품들. '금강산 하비로'(왼쪽)와 '가죽내자(금강산 선녀).' ⓒ민족21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된 남북교역의 양은 꾸준히 그리고 다양하게 확대, 증가하고 있다. 월간 《남북교류협력동향》(2008년 1월호)에 따르면, 지난 1989년 24품목 66건이 반입된 데 비해 지난해에는 자그마치 450품목 2만 5027건이 반입되었다. 전년 2006년 421품목 1만 6412건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통일부 남북경제협력국 남북교역팀의 고화섭 주무관은 “2008년 1월 중 일반 교역량은 전년 동월 대비 14.2%나 증가했다”며 “앞으로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농수산물(46.1%), 광산물(28.7%) 그리고 철강금속제품(23.7%)이 아직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양한 품목으로 수입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측 산 제품은 무엇보다 관세 없이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습니다. 중국산을 비롯한 여느 외국산에 비해 저렴한데다 품질까지 뛰어나죠. 앞으로 여러 품목에서 단계적인 수입증가가 예상됩니다.”
남북교역과 관련, 현재 원산지가 북측인 물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제품, 자재의 수입 또는 수출에 관한 관세와 국내 관세를 면제하는 것이다. 물론 북에서 남으로 직송된 물품이라 하더라도 원산지가 북이 아닌 물품은 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앞으론 더 자주 만나자, ‘Made in DPRK’!

유형의 상품들뿐만 아니라 무형의 저작물들도 이미 남측에선 친숙한 존재다. 통일부에서 정리한 품목들 가운데엔 소량이긴 하나 서적, 그림, 예술품 등의 제품이 다양하게 올라있다. 그리고 구성비율과 같은 수치로는 따질 수 없지만 음악,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문화컨텐츠가 남측 대중들을 사로잡은 지도 이미 오래다. (본지 2007년 12월호에 실린 문화기획 ‘남측 누리꾼 사로잡은 북측 가요’를 참고하시라.) 이는 ‘Made in DPRK’가 유형의 상품을 넘어 무형의 문화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측의 중견작가 홍석중이 쓴 장편소설 《황진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남측 출판사 ‘대훈닷컴’을 거쳐 지난 2002년 새 옷을 입은 《황진이》는 남측 동명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남측을 휩쓴 ‘황진이 붐’의 중심에 이 책이 서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해가 바뀐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남측 독자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 북측의 문학 작품들도 꾸준히 남측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은 '보라출판사'의 《겨레고전문학선집》으로, 북의 《조선고전문학전집》을 남측에서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민족21

또한 우리 민족이 즐겨 온 노래와 시, 일기, 문집, 소설을 묶은 북의 《조선고전문학선집》도 남측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보리출판사’에서 출간된 《겨레고전문학선집》이 그것이다. 《숙향전》, 《옥루몽》 등 북과 별도의 계약을 맺어 선 보이게 된 작품들은 현재 35권 정도 발행된 상태. 이 역시 독자들의 입 소문을 타고 꾸준히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북측의 문학 작품들은 언젠가부터 꾸준히 남측의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 'Made in DPRK'는 유형의 상품을 넘어 무형의 문화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북측의 중견작가 홍석중이 쓴 《황진이》는 남측에서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

문학과 같은 출처가 분명한 저작물들 외에 온라인 상에서 누리꾼들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지는 북측 작품들도 많다. 최근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가 그 한 예. 한 한류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이 뮤직비디오는 남측 대중들에 친숙한 가요 〈휘파람〉, 〈도시처녀 시집와요〉 등을 주제로 북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파람〉의 경우,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 복순이네 집 앞을 지날 때 이 가슴 설레어 / 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로 이어지는 노랫말에 걸맞게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어 그간 북에서 내놓은 여타의 작품들과는 색깔이 구별되는 게 특징이다.

누리꾼들은 매일 밤 사랑하는 여인의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휘파람을 부는 젊은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나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자 주인공이 꽃다발을 품에 안고 기뻐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시 처녀들에게 시골로 시집 와 함께 살자는 내용을 담은 〈도시처녀 시집와요〉 역시 모내기 때 남 모르게 맺어진 도시 처녀와 농촌 총각의 사랑을 그리며 누리꾼들의 흥미를 한껏 유발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 생활 속 ‘Made in DPRK’는 얼마든지 더 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그것들은 보다 다양한 얼굴로 남측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휘파람〉이나 〈도시처녀 시집와요〉와 같은 뮤직비디오를 향해 던진 네티즌의 댓글처럼, “귀한 통일의 전령” 혹은 “미리 만나는 통일의 봄소식”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앞으론 더 자주 만나자, ‘Made in DP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