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 영화평론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통찰이나 혜안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식스 센스〉의 소년은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죽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소년에게 뭔가를 호소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소년에게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그들을 도와줄 힘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능력 때문에 소년은 더욱 힘들어진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소년은 비정상이라고 간주된다. 만약 소년이 계속해서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주장한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격리될 것이다. 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것을, 홀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4인용 식탁〉의 주인공인 연(전지현)이와 정원(박신양)의 처지도 비슷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정원은 밤늦은 시간의 지하철에서 아이들을 본다. 미동도 하지 않고,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다음 날, 뉴스를 들은 정원은 그 아이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원이 그들을 보았을 때, 아이들은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날부터 정원은 아이들의 유령을 보게 된다. 곧 신혼살림을 시작할 아파트에서, 행복한 식사를 해야 할 4인용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그러나 정원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얼마 후, 정원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러 간 신경정신과에서 연을 만난다. 연은 아무 예고 없이 픽 쓰러져 잠이 드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정원은 정신을 잃은 연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침에 깨어난 연은 “아이들을 방에다 재워야겠어요”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연이 자신과 같은 것을 보았음을 알게 된 정원은 연에게 집착한다. 그것을 본 게 자신만이 아님을 알고, 정원은 안도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이수연 감독은 〈4인용 식탁〉이 소통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원과 연이의 관계를 이어주고, 틀어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소통이다. 낯선 사람을 꺼리는 연이에게 다가간 정원은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성적인 뉘앙스는 전혀 없이, 그들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대의식을 갖고 동료가 된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연은 말한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믿지 않는다”라고. 연은 한 여인이 투신자살하는 광경을 본다.

아래에서 내려다본 게 아니라, 베란다에 서 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찰나의 순간, 연은 그녀의 눈물과 한숨까지 본다. 그녀의 작은 표정까지도 똑똑히 목격한다. 하지만 아무도 연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 짧은 순간에 추락하는 여인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연의 남편이 그랬고, 연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게 연은 세상에서 멀어져갔고, 홀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불신이 모든 파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원은 연을 믿었다. 자신이 본 것을 그녀도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거기까지다. 무당의 딸인 연은 정원에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정원은 어릴 때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이 있고, 그것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연은 그 감추어진 기억을 돌려준다. 술을 마시고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방안에 연탄을 피웠고, 그 때 난 불로 여동생이 죽었다. 그 기억은 꽁꽁 봉인된 채 정원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정원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끔찍한 과거였다.

그래서 정원은 연을 배신한다. 그건 단순한 개인의 배신이 아니다. 〈4인용 식탁〉에는 많은 죽음이 나온다. 정원이 보는 두 아이의 죽음이 있고, 산후 우울증 때문에 아이를 죽여버린 엄마가 있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여인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한다. 일종의 동반자살로서.

그런 죽음들은 최근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투신자살하는 기사를 보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 죽음들처럼, 〈4인용 식탁〉에서 보이는 자살과 죽음은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죽음이란 충분히 고려해볼 법한 도피처로 떠오른다.

사회적인 자살과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

〈4인용 식탁〉만이 아니라 〈바람난 가족〉에서도 아이들이 죽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국내의 공포영화에서 유별나게 자살이 많고, 아이들의 죽음이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들의 죽음을 보여주면서 공포심을 자극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당면한 한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4인용 식탁〉은 그런 사회의 잔인함과 그 안에서 바스라지는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4인용 식탁〉이 원하는 것은 깜짝 효과나 순간적인 놀람이 아니다. 〈4인용 식탁〉은 우리의 일상에 감추어진 지독한 외로움과 불신 그리고 상처를 담아낸다. 귀신의 출몰이 아니라, 그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정원이 아이들의 유령을 보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진실을 평소에 보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4인용 식탁〉의 화면은 ‘블리치 바이 패스’란 기법을 이용해 탈색시켰다. 그래서 관객은 거칠면서 불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어딘가 낯선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화면에 화장기 전혀 없는 전지현의 얼굴이 떠오를 때,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꿈처럼 날아가 버린다.

아쉽게도 〈4인용 식탁〉은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보통의 공포영화를 생각하고 갔다면 〈4인용 식탁〉은 매우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지루함은 우리 세상의 흐름과도 같다. 진실을 만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4인용 식탁〉의 공포는 매우 느리게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목덜미에서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건 공포가 아니라 슬픔과 두려움이다. 그걸 느끼는 순간 〈4인용 식탁〉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처절한 죽음과 배신이 존재하는 비극인 것이다.  [민족21,200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