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선 /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소 연구교수

 

	평양시 개선문 옆에 자리잡고 있는 개선영화관.[유수 기자]

북의 영화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떨오르는 화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일 것이다. 북을 잘 모르거나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라 하여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화매니아’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북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화에 관한 책을 썼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실제로 북에서 영화는 정치사회 변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예술장르의 하나로 중요시된다.

북에서 영화가 정치사회발전과 밀접한 관계라는 점은 ‘수령형상문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가장 앞장에 선 예술분야가 영화였으며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문예이론의 핵심인 ‘종자론’이 처음 제기된 것도 《영화예술론》이었다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북은 1950년대 후반 ‘8월종파사건’과 1960년대 중반 ‘박금철·이효순사건’을 겪은 뒤 1967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한 방침〉을 제기했다.

이후 수령형상화의 문제가 북측 문학예술 창작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됐다. 유일사상 체계형성과 관련해 처음 수령형상화 작업이 진행된 분야가 바로 영화였다.

	기록영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의 한 장면 북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제작되는 기록영화 장르 중 ‘행사기록영화’에 속한다.

수령형상이란 한마디로 ‘노동계급에서 수령에게는 생사를 같이 할 혁명동지들과 전사들이 있으며, 수령은 바로 이런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에 의해 혁명의 영도자로,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추대돼야 하고, 수령은 그들을 한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따뜻하게 이끌어준다’는 수령관을 문학예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북측 문학예술에서 제기하는 혁명, 주체, 민족의 문제는 결국 수령형상화의 문제로 일관된다.

영화분야가 수령형상화의 중심 매체로 활용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영화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정서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영화는 시청각의 제반 감각과 음악, 미술, 무용, 극적인 요소가 결합된 복합적 장르로 필요에 따라 모든 요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영사막과 환등기만 있으면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또 한번 촬영된 필름은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6·25전쟁 직후 열악한 문화 인프라 상황 속에서 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매력적인 장르가 될 수 있었다.

수령형상화와 관련하여 맨 처음 시작한 작업은 전문 창작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의 영향력을 활용하기 위한 단체로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산하에 백두산창작단과 만경대촬영단을 설립한다.

백두산창작단은 1967년 2월에 창립된 수령형상 전문 영화제작단이다. 창작단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김일성 주석의 혁명역사와 혁명가정을 취급한 혁명영화들을 창작하고 항일혁명 투쟁시기에 창작된 소위 ‘불후의 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역할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또 당의 주체적 문예사상의 진리성과 정당성을 창작을 통하여 확증하며 문학예술부문에 쌓아올린 당의 업적을 옹호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다. 만경대촬영단은 같은 목적으로 창설된 기록영화 창작단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란 항일무장혁명투쟁 시절 김일성 주석이 창작한 작품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작품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곧 북측 문화예술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백두산창작단의 창립은 예술영화에서 김일성의 혁명역사와 혁명가정을 취급하는 작품창작의 시원을 열었다는 점에서 영화예술 발전과 전반적인 문학예술 발전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일성 주석은 “문학예술을 혁명투쟁의 위력한 무기로 보고 혁명적 문학예술의 창작과 활동에서 나서는 이론실천적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힘으로써 인류문예사상사에 공헌을 한 주체적 문예사상을 창시하고, 직접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을 창작하여 주체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을 반영한 문학예술작품의 고전적 본보기를 마련”하였는데, 백두산창작단이 창립되면서 고전적 본보기를 북 문예의 정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백두산창작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문학예술창조에 있어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의 요구와 속도전의 혁명적 방침을 철저히 구현해 ‘백두산창작단의 일솜씨’는 새로운 공산주의적 창작기풍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북에서 영화제작의 방향과 원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화예술론》에 제시되어 있다. 이 글은‘생활과 문학’을 비롯하여 연출, 성격과 배우자, 영상과 촬영, 음악, 창작지도 등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영화예술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예술분야의 이론서로는 가장 이른 1973년 4월 11일에 발표됐으며, 영화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문학예술 창작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이후 문학예술에 관한 이론서들이 나온 1990년대까지 주체문예이론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했다.

북의 영화는 크게 예술영화, 기록영화, 과학영화, 아동영화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할 때는 예술영화를 지칭한다. 각 영화유형에 따라서 별도의 제작집단이 존재한다.

	애국사상 고취를 위한 아동영화 <소년 장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주인공이 오랑캐들과 싸움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제시하면서, 민족제일주의 정신과 애국주의 사상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예술영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인 극영화를 의미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예술영화는 “인간과 그의 생활을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형상적으로 반영하는 영화의 한 종류”로 규정한다.

예술영화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대작이라고 한다. 대작은 현 시대의 준엄한 계급투쟁과 혁명발전 과정을 폭넓고 깊이 있게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의 혁명적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작품이다. 대작은 단순히 규모가 커서 대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대작이어야 한다. 규모가 큰 역사적 사건을 그린다고 대작이 되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 사건의 규모는 크다고 하여도 사상적 내용이 깊어야 한다.

대작에서는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반드시 주인공들의 ‘생활’과 밀접히 결부시켜야 한다. 생활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작품의 내용이 주인공들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사상의식을 발전시키는 필수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작 창작에서 역사적 사건들이 주인공들의 생활이 되게 하려면 주인공들이 그 사건을 올바로 인식하고 체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그들의 실천적 투쟁이 있어야 하므로, 창작가들은 이 점을 잘 형상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

어느 한 역사적 시기의 사건 하나라도 그 시대와 역사의 전모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면 능히 대작의 줄거리로 삼을 수 있고 또 삼아야 한다. 역사적 사건들로 줄거리를 구성하는 것은 주인공의 혁명적 세계관을 형성해야 하는 대작 창작의 기본 조건이다.

시대의 본질적 특징과 혁명 발전의 합법칙성을 체현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건을 기초로 해야만 공산주의자의 전형적 성격을 창조할 수 있고 인물들이 혁명적 세계관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진실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록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을 담은 영화이다. 특정한 사건이나 큰 행사를 진행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영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적이다.

주로 김일성 주석의 현지 방문 지도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무지도, 해외 순방, 각종 정치행사나 건설현장의 모습, 외국 국빈방문, 영웅칭호 수여기록 등을 담는다. 또한 자연 풍경이나 역사물에 대한 촬영 등 주로 보존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도 기록영화에 속한다. 수려한 북녘의 자연 풍광을 담은 〈백두산〉 〈사계절 아름다운 나라〉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과학영화는 과학기술 지식의 보급과 대중화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과학영화는 “과학기술과 생산 방법 및 법칙과 원리들을 흥미 있고 알기 쉽게 보여”줌으로써 과학적 인식을 확산하고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과학영화는 과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관련된 각종 계몽이나 홍보가 주를 이룬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이나 축산, 위생, 과학, 경제, 문화에 걸쳐 인민들이 필요한 정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과학영화로는 〈우리나라 노루와 사슴〉 〈천연기념물 3호〉 〈불개미와 산림보호〉 〈야산을 리용한 풀밭조성〉 〈전기〉 〈옥수수〉 〈비날론〉 등이 있다.

아동영화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화이다. 아동영화의 대부분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인데 북에서 주로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은 크게 만화영화, 인형영화, 지형영화로 대별된다.

이 가운데 셀 애니메이션(Cel Animation)인 만화영화가 제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셀애니메이션은 정지된 화면들을 하나하나 찍어서 빠른 속도로 돌려 눈의 잔상현상을 통해 실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북의 만화영화는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부드럽고 제작수준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날의 눈석이> 중 한 장면 북의 대표적인 예술영화인 <봄날의 눈석이>는 재일동포단체인 민단과 총련 소속 연인이 결국 결혼에 성공하면서, 군사분계선 너머의 장벽도 어느새 ‘봄날의 눈석이’처럼 무너질 것이 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북의 영화는 정치사회 변화와 맞물려 전개되어 왔다. 해방직후부터 1966년까지는 열악한 영화시설과 6·25전쟁 등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해방직후 영화시설의 대부분이 서울에 있었으며, 북측지역에는 자본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소련과 동구의 지원 속에 작품이 창작되었다.

북측 영화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었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겪으면서 유일사상지도 체계의 확립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혁명투쟁 시절 창작하였거나 공연한 작품을 문화예술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전반 북측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1972년 제작된 항일 빨치산 투쟁을 주제로 한 혁명 가극을 영화화한 〈꽃파는 처녀〉를 비롯하여 〈열관리공〉 〈로동가정〉 〈영원한 전사〉 등이 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한 3대 혁명 소조 운동을 반영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 3대 혁명 소조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제작된 최초의 영화는 1973년 제작된 집체작 〈처녀 지배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1975년 제작된 작품으로 북에서 주체적 인간의 전형을 제시하고 당원으로서의 의무와 양심에 대해 밝힌 것으로 평가되는 〈산정의 수리개들〉이 있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들면서 약간 양상이 달라진다. 주제의 폭이 넓어져 남녀의 애정, 도시와 농촌의 갈등, 세대간의 의식차이를 반영한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예전에 보기 힘들었던 액션이나 애정의 표현도 많아졌다. 키스신이나 포옹 등 애정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 강행군을 지나면서 1970년대를 배경으로 주석에 대한 충성을 내용으로 한 작품, 생활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새로운 지도자 체제에 맞는 사상성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맞아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 북 사회 전반의 화두가 되고 있다. ‘선군정치’와 ‘일심단결’을 강조하는 사회상이 북의 영화에도 드러나는 셈이다.

영화의 해외 교류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활발한데, 해외에 널리 알려진 영화로는 북 최고의 인기 배우인 오미란이 주연하여 1987년 평양에서 개최된 비동맹·발전도상국의 국제 영화 축전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도라지꽃〉이 있다.

이밖에도 북측 시나리오계의 독보적 존재인 이춘구의 작품인 〈열 네번째 겨울〉 〈군당 책임비서〉, 주부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오혜영의 〈나의 행복〉이 있다. 〈월미도〉, 10부작 〈임꺽정〉등도 남쪽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다.

최근 북측 영화는 과거에 비해 활동이 부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중과의 접촉면이 보다 넓은 TV 드라마가 인민들의 관심을 끌면서 상대적으로 침체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초엽 북측 당국이 제작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방침을 밝히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시리즈 61∼62부를 비롯 15편 가량의 영화가 새로이 발표되었고 새로운 대형배우가 등장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영화제작이 국가가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는 ‘국책사업’인만큼 북의 영화산업은 앞으로도 대중교양과 선전방향과 맞물려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