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 영화평론가

 

[민족21. 33호]

많은 독자들이 이미 〈매트릭스〉를 보았을 것이다. 〈매트릭스〉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진정한 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는 이미 기계가 점령한 지 오래고, 인간은 기계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종의 건전지로 쓰이고 있다. 기계는 사람들을 거대한 배양기 속에 집어넣고, 그 사람들의 의식만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현실에서 살게 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요원들에게 발각되어 목숨을 잃는다. 앤더슨은 우연히 그런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모든 ‘현실’을 잊어버리고 가상의 행복에서 살아갈 것인가, 현실을 깨닫고 치열한 투쟁의 길에 설 것인가.

 

 

앤더슨은 현실을 택하고 모피어스, 트리니티와 함께 투쟁의 길에 나선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지는 게 있다. 모피어스는 앤더슨을 ‘구원자’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메시아인 것이다. 모피어스는 앤더슨을 ‘더 원’이라고 부르며, 각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자신이 진정한 구원자인지 의심하지만, 결국은 깨닫게 되고 예언은 실현된다.

 

여기까지가 〈매트릭스〉 1편의 내용이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의 이후 내용까지도 이미 생각해놓았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원전에 국한되지 않고 다소 자유롭게 진행된다. 애니메이션인 〈애니매트릭스〉는 기본 설정만 같고 일본의 가와지리 요시아키, 와타나베 신이치로 등의 감독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게임인 〈엔터 더 매트릭스〉는 주인공이 네오가 아니라 니오베이고,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후 지난 6월에 개봉한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전작의 이야기를 더욱 펼쳐놓는다. 고속도로를 직접 만들어 촬영했다는 추격 장면은 대단히 멋지지만, 전체적으로 말이 많았고 그 덕에 비판도 많았다.
키메이커에게 얻은 열쇠로 프로그래머를 만난 네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네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더 원’은 네 번이 있었고, 네오는 다섯 번째”라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원’의 존재는 프로그램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완벽한 프로그램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혼란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오가 택할 것은 단 하나 사랑이냐, 시온이냐 라는 것뿐이고, 어떻게 되더라도 매트릭스는 붕괴되지 않는 것이다.

 

이전의 구원자들은 모두 인간의 도시인 시온을 택했고, 그 결과 매트릭스는 전혀 타격없이 보전되었다. 그런 난해하고도 복잡한 이야기를 들은 네오는 힘없이 물러나고, 돌아온다. 결국 진정한 구원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마지막 장면에서 현실의 네오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다면 네오는 진정한 구원자인 것일까?

 

인간은 언제나 구원자를 갈망해왔다. 구한말에 영웅들의 일대기나 전기가 호응을 받은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대중은 구원자를 원한다. 때로는 그것이 독재자에 대한 호응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매트릭스〉가 처한 상황은 조금 복잡하다.

〈매트릭스〉에서 앤더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매트릭스 안에서 사람들은 현실과 다름없는 ‘현실감’과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짜라고 단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1편에서 모피어스 일행을 배신하는 사이퍼처럼, 현실과 똑같은 가상현실을 택하는 이유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왜 혁명이 필요한 것이고, 혁명을 일으킨 이후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매트릭스 레볼루션〉이 말해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왜 세련된 매트릭스 대신에 다소 조잡하고 거친 현실을 택하려 하는가. 3편에서 워쇼스키 형제는 아주 단순하고 무난한 결말을 택한다.

 

그것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와도 일맥상통한다. 〈터미네이터3〉는 역사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말한다. 2편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짓고 핵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끝을 냈지만, 3편에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결국 기계는 인간을 장악하려는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은 거기에 맞선다. 영원한 결말도, 영원한 압승도 없는 것이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오의 희생으로 기계가 인간에게 다시 자유를 주지만, 그것은 영원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워쇼스키 형제는 어디에도 완전한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던, 반대의 경우이던 간에 거기에는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2편에서 프로그래머가 말한 것처럼, 매트릭스에 무제한의 자유와 행복을 주었더니 오히려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숙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인간에게 자유로운 체제를 만들겠다는 사회주의의 문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인간의 모든 욕망을 교육으로 제어할 수 있고, 모든 인간을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오류였다. ‘매트릭스’의 세계 역시 그렇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놓는다 해도, 그 안에서는 오류가 생기게 된다. 인간은 오류에서 길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말은, 나쁘게 말하자면 거의 결론짓는 것 없이 대충 봉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 근원부터 따지자면 애초에 〈매트릭스〉는 갖가지 철학적 경향을 늘어놓는 일종의 ‘카페테리아 철학’에 불과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건 나쁘지도, 조잡하지도 않다.

 

〈매트릭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 전시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매트릭스〉 시리즈를 보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게 〈매트릭스〉의 흥미로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