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요즘 같은 무더위에 생각나는 음식 1순위, 냉면.

진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육수가 진할수록, 가느다랗고 쫄깃쫄깃할수록 높은 점수를 주지만 냉면의 대모(大母)격인 평양냉면은 오히려 정반대일수록 정통임을 인정받는다.

냉면은 원래 겨울철 먹던 음식으로 꿩으로 육수를 내고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색깔이 검고 표면도 매끄럽지 않으며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꿩을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자 닭고기나 쇠고기로 국물 맛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쫄깃쫄깃한 것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 식성에 따라 메밀가루에 밀가루와 감자전분을 섞어 면을 뽑고 있다.

냉면의 이 같은 변천사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의 경계마저 흐려지게 했다. 흔히 물냉면은 평양냉면, 비빔냉면은 함흥냉면이라 부르는데, 사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각 지방의 특색을 반영한 향토음식이라는 의미지 육수에 말아먹거나 비벼 먹는다고 해서 구별되는 이름이 아니다.

들이 넓어 잡곡이 풍부한 평안도 지방의 음식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담백한 맛이 특징으로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의 맛은 이러한 풍토 속에서 나왔다.

반면 산간지대가 발달해 고구마와 감자 생산량이 많고 동해안을 끼고 있어 풍부한 어장을 확보한 함경도 지방은 칼칼하게 매운 맛을 내는 음식이 발달했다.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고무줄같이 질긴 면을 뽑고 그 위에 삭힌 홍어나 가자미를 얹어 매운 양념으로 비벼먹는 함흥냉면은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나온 음식이다.

평양냉면의 진수는 심심한 국물 맛과 툭툭 끊어지는 면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진한 육수와 쫄깃쫄깃한 면발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냉면 매니아들은 평양냉면이 먹을수록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성을 가졌다고들 말한다. ‘맹맹해서 무슨 맛인 줄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땡긴다’는 생각이 든다면 초보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제 맛을 내기는 어려운 평양냉면,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 아쉬운 게 많았다. 육수를 낼 때는 찬물에 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은 후 센 불에서 끓인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고 계속 끓이면서 떠오르는 거품과 기름을 계속 걷어내야 한다. 사리는 익히는 것보다 제대로 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텁텁한 맛이 나지 않게 하려면 찬물에 재빨리 헹구는 것이 중요한데, 얼음물을 쓰면 더욱 좋다. 헹굴 때도 면 표면에 끈적끈적한 게 남아있지 않도록 여러 차례 문지른다.

또 면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육수를 부었을 때 감칠맛이 난다. 면을 삶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은 후 고명을 얹고 나니 그런대로 흉내는 낸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남과 북이 여름에 먹는 공통 별미 치고 냉면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평양 사람들도 냉면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을 것이다.

또 국수는 잔칫집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 아닌가. 얼마 전 북방한계선(NLL) 연평도 해상에서 들려온 ‘백두산’‘한라산’, 남북 공동 교신 소식처럼 반가운 잔칫집 화해무드가 냉면발처럼 길게 국물 맛처럼 시원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2004년 7월호]

북의 ‘료리CD’에 나오는  평양랭면 재료와 가공법 ▶에네르기 에네르기 94.9Cal / 단백질 4.2g / 탄수화물 70.1g / 지방 10.5g / 산도 17.9  ▶음식감(재료) 메밀가루 50g / 소고기 30g / 돼지고기 20g / 닭고기 10g / 무김치 30g / 오이 20g / 닭알(달걀) 50g / 배 10g / 멘진 2g / 소금 3g / 간장 10g ▶가공법 ● 국수사리 만들기 1. 메밀가루는 채로 쳐서 반죽기에 넣고 70℃의 멘진물을 부어 반죽한다. 2. 국수를 눌러 끓는 물에서 1분 30초∼2분 동안 삶아 익힌다. 3. 찬물에서 2∼3회 씻어 사리를 짓고(만들고) 물기를 찌운다(없앤다). ● 국수국물 만들기 1.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5∼6배의 찬물에 넣고 센 불에서 20분 정도 끓인 다음 온도를 낮추어 1∼1.5시간 정도 서서히 끓이면서 거품을 걷어낸다. 2. 고기가 익으면 건져내고 국물에 소금, 간장을 넣어 맛을 들여 차게 식힌다. ● 꾸미 및 고명 만들기 1. 삶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길이 5∼6cm, 너비 2cm, 두께 0.3cm로 썬다. 배, 무김치, 오이는 0.3cm 두께의 버들잎 모양으로 썬다. 2. 닭알은 삶아서 절반 쪼갠다. ● 완성가공 1. 그릇에 국수사리를 담고 김치, 배, 오이, 고기를 얹고 닭알을 놓는다. 2. 국수국물을 붓고 간장, 식초, 겨자장을 곁들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