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곤 했다. 아궁이에 불 때서 밥짓고 전신주 하나 없어 모두 일찍 잠들어야했던 깡촌에서 나는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을 낚았다. 그중 하나가 할머니댁에서 키우던 누렁이에 대한 기억이다. 가족들이 일을 돕는다며 밭 매러 나간 사이 나는 누렁이에게 밥도 주고 물건을 던져 입으로 물어오게 하는 훈련도 시켰다. 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린 내 말도 잘 들었기에 누렁이와 동무가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누렁이는 내가 첫정을 준 동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2년쯤 뒤에 다시 찾은 할머니댁에서 누렁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 왈, “아가, 누렁이 찾냐. 작년 여름에 잡아먹어 부렀는데, 어짜까이∼”함께 놀던 내 ‘동무’를 잡아먹다니…. 당시엔 몹시 충격을 받았지만 부모님이 워낙 개장국을 좋아하시는지라 자라면서 개고기 먹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누가 뭐라든 우리 음식
개고기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서민들에게 소는 농사를 짓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축이었고, 돼지도 귀했으니 자연 개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개장국은 후대에 들어 갖은 수모를 겪게 됐는데, ‘보신탕’이란 정체불명의 용어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다. 보신탕은 이승만 정권 때 생긴 말이다. 미국의 원조에 기대 살던 시절, 개를 먹는 야만적인 행동을 삼가라는 미국인들의 경고에 따라 이름에서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는 개장국이란 말 대신 보신탕이란 말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남쪽과 달리 북쪽에서는 오래 전부터 개고기 요리를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이라 평가하며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오고 있다. 개고기란 말은 없고 ‘단고기’라고 부르는데, 그 맛이 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평양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문식당인 ‘평양단고기집’에서 먹었던 단고기 요리에 대해 칭찬한다. 남쪽에서는 전골, 수육, 탕, 무침 등의 메뉴로만 내놓지만 이곳에서는 묵, 찜, 스테이크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오늘 만들어볼 ‘단고기찜’도 남쪽에서는 낯선 음식이다. 이번 요리는 단고기 매니아인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단고기찜은 삶는 방법이 중요한데, 먼저 찬물에 담가 핏기를 제거하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마늘, 생강, 양파 등을 넣어 끓이는 것이 좋다. 또 육즙이 빠져 나오지 않도록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이다가 표면이 익으면 중불에서 2∼3시간 끓여야한다. 중탕을 하는 것은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다. 처음 해본 요리지만 양념 초간장까지 곁들여 상에 내니 그럴 듯 해보인다.
“첫맛은 짭쪼름하고 뒷맛은 고소하다”.
또 한 명의 매니아인 아버지의 평가다. 덧붙이자면, 씹는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하다. 예찬론자들은 단고기가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고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미노산 조직이 사람과 비슷해서 단백질 흡수율이 높기 때문에 과식해도 탈나지 않으며, 몸 안에서 잘 녹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살 찔 염려도 덜하다.
이번 장마가 그치면 십 년 만에 찾아온다는 무더위에 기력이 떨어지는 일이 많을 것이다. 펄펄 끓는 탕 종류말고 뭔가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면, 그리고 ‘첫 경험’으로 인한 선입견을 과감히 떨쳐낼 수 있다면 단고기찜을 한번 만들어보자. 마침 달력을 보니 초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족21,41호 문숙희 객원기자]
북의 ‘료리CD’에 나오는 단고기찜 재료와 가공법
▶에네르기 에네르기 262.4Cal / 단백질 39.2g / 탄수화물 2.8g / 지방 10.5g / 산도 14.9
▶음식감(재료) 단고기 200g / 깨소금 1g / 간장 10g / 파 10g / 마늘 2g / 식초 2g / 참
기름 4g / 후춧가루 0.2g / 고춧가루 3g
▶가공법
1. 단고기는 끓는 물에 넣고 피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삶아 뼈를 뽑은 다음 토막으로 썰어 간장과 참기름에 재웠다가 단지에 넣고 중탕한다.
2. 간장에 깨소금, 식초, 파, 마늘, 후춧가루,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초간장을 만든다.
3. 고기가 거의 익으면 다시 양념하여 쪄서 양념초간장과 같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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