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맞아 평양시 중화군에 있는 해외인사애국자묘역을 찾은 가족들이 제사음식을 차리고 있다. ⓒ조선신보
[94호] 민족21
새해 2009년 오전 0시, 평양에서 가장 붐비는 장소는 만수대언덕이다. 만수대언덕에는 12월 31일 저녁부터 끊임없는 인파가 몰려든다. 주변의 만수대예술극장 앞이나 거기서 좀더 간 곳의 김일성광장을 비롯한 인민대학습당 둘레의 넓은 부지에는 시민들로 꽉 찬다.
평양시민들은 명절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가족, 친척끼리, 직장동료끼리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있는 만수대언덕에 올라 새해인사와 함께 꽃바구니, 꽃다발을 증정한다.
평양의 주요거리인 영광거리, 천리마거리, 승리거리 등 시내 주요거리들에는 ‘새해 축하’ ‘주체 98’ ‘설인사 드립니다’ 등의 글씨들과 축등 등 여러 장식물들이 설치되어 새해 분위기를 돋군다.
새해 첫날 만수대언덕은 인산인해
인민대학습당 대형시계 바늘이 1일 오전 0시를 가리키면 <김일성장군의 노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다면 북에서는 새해 첫날에 차례와 세배를 드릴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북에서도 설은 음력설을 센다. 음력설에 돌아간 조상들에게 드리는 설인사로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제사)를 지낸다.
남쪽에는 의외로 북에서는 “전통적 제례는 미신이며, 조상 숭배는 봉건적 찌꺼기”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사는 없어졌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상을 잘 모시는 풍속은 북에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다만 번잡한 예식이 간소화 됐을 뿐이다.
지난해 추석을 맞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평양 시민의 추석은 조상을 잘 모시는 의미는 살리면서 그 형식에서는 번잡한 예식을 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에서는 “죽은 다음에 효자노릇 하려 요란하게 차리지 말고 살아 계실 때 효도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북에서의 제례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가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낡은 생활습관의 하나이다. 죽은 사람의 무덤이나 사진 앞에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은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삿날에 무덤에다 꽃을 가져다 놓던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경건한 마음으로 죽은 사람의 지난 날 투쟁을 회상하면서 그가 다 하지 못한 일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저 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자는 결의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김일성 주석은 〈학생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참된 후비대로 교육교양하자〉라는 연설을 통해 “죽은 사람을 추모하여 꽃다발이나 가져다 놓는다면 몰라도 향불을 피우고 죽은 사람 앞에다 떡을 차려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이것은 다 봉건시대의 낡은 사상과 습관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명절에 조상묘 찾는 전통은 여전
이에 따라 북에서는 추석 성묘와 직계 가족의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전통 명절들이 부활되면서 명절에도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늘고 있다. 명절날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나 북 주요 인사의 기일에 묘지 앞에 놓인 화환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광경이다.
새해나 명절 때마다 노동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묻혀 있는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에 화환을 올리는 의식이 열리고, 동명왕릉 옆에 있는 해외동포묘(력포구역)를 찾아 제사를 하는 평양시민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가정에서도 고인의 기일과 생일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간소하게 치러지는데 다양한 음식을 장만해 상에 올리기보다는, 고인의 사진을 상위에 올려놓고 추도식을 진행하는 정도다. 가족들은 큰절을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선 자세로 묵상하는 경우도 있다.
북에서는 가족, 친척들이 사망하면 3일제, 돌제, 3년제를 크게 지내고, 기일이나 추석날이면 묘를 찾아 제를 지낸다. 추석과 같은 민속명절이면 벌초도 하고 제사를 지내거나 꽃을 봉분이나 상돌(床石) 앞에 놓고 고인을 추모하며 묵상을 한다. 명절에 조상의 묘를 찾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전통인 만큼 주요 명절이면 공동묘지를 향하는 주민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각 운수사업소에서는 ‘버스기동대’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특별운행하기도 한다.
평양 성묘객이 조상의 무덤을 찾아 풀을 베고 잔디도 입히며 차례를 지내는 것은 남녘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화장이 일반화되고 1998년 이후 유골보관실이 설치되면서 북의 제례문화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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