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1983년의 뉴욕 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물건을 파는 한편 흑인 점원들을 감시하는 데 더 신경을 쓰라는 특명을 받았습니다. 주인은 돈벌이를 하고 있는 지역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겸 인건비가 적게 드는 스무살 전후의 동네 청년들을 점원으로 고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주인이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돈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동네 젊은이들이 주인에게 구직을 호소하는 말을 들어보니 실감나더군요.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게 대개 두 가지였는데,

첫째가 "I don't steal (나는 훔치지 않아요)"이고
둘째가 "I can count (나는 계산할 수 있어요)"였거든요.

점원들은 돈만 훔치는 게 아니라 물건도 훔쳤는데 수법이 참 기발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게 진열대 뒤쪽을 정리한 뒤 빈 상자들을 밖에 버리면서 큰 상자 안에 맥주 한 케이스를 담아 나가는 거죠. 밖에 친구들을 대기시켜놓고 말입니다.

한편, 그들이 돈을 계산하거나 세는 데는 몹시 서툴렀습니다. 예를 들어, 20달러짜리 지폐를 내고 3달러 50센트 어치 물건을 사면 16달러 50센트의 거스름돈을 한꺼번에 주는 게 아니라, 먼저 50센트를 내주며 합이 4달러가 되었다고 하고, 거기에 1달러짜리를 더하면서 합이 5달러, 그리고 5달러짜리를 놓으면서 합이 10달러, 마지막으로 10달러짜리를 얹으면서 합이 20달러라고 확인해주는 식이었지요.

이는 계산이 서툴러서이기도 하지만 손님과의 시비를 없애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10달러 지폐를 내놓고도 20달러 지폐를 건넸다고 우기거나, 거스름돈을 적게 받았다고 속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거든요.

아무튼 초등학교 다닐 때 주산 유단자가 되어 천이나 만 단위 안팎의 숫자는 아무리 많이 그리고 아무리 빨리 불러도 고개만 끄덕끄덕하면 암산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저로서는 정말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미국식 돈 세는 방법도 익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