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반미주의였습니다. 앞에서 이미 얘기한대로, 1987년 말 일시 귀국했을 때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가 적힌 커다란 펼침막이 한 대학교 정문 위에 내걸려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반미주의에 관한 영문책 한 권을 번역해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학교로 돌아가 ‘1980년대 한국에서의 반미주의’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한국에서의 반미운동이 1980년대에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 1945년 한반도의 분단과 함께 반미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일찌감치 논문 주제를 정한 터여서 1991년 박사과정 1년차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반미주의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인터넷이 발달되기 전이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수와 친구들에게 소문을 냈지요. 반미주의에 관해 논문을 쓰고자하니 그에 관해서라면 책이든 논문이든 신문기사든 잡지기사든 보는 대로 알려달라고 말입니다.
그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참 재미있는 주제를 공부한다며 호기심을 표하는데, 한국인들은 교수든 학생이든 그런 주제로 논문을 써서 취직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을 해주더군요. 반미주의에 관해 공부한다는 자체가 반미주의자 또는 반미운동가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효과는 컸습니다. 1992년 여름 한국을 다녀온 경제학과 친구가 저에게 큰일 났다며 [한국인의 반미감정]이라는 책이 신문 광고에 났다고 알려주더군요. 제가 쓰고자하는 논문을 남이 이미 책으로 펴냈으니 어떻게 하겠느냐는 뜻이었지요. 곧 구해 보았더니 경북대 역사학교수가 지은 것인데 1980년대 반미운동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연구범위는 1945년부터였으니 다행히 겹치는 내용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제 논문 주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던 미국인 친구가 1993년 여름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대학원에서 1992년 나온 정치학박사 학위논문 제목을 조사해보니 아메리칸 대학에서 “한국에서의 반미주의, 1945-1992”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찔해지더군요. 즉시 입수해 단숨에 읽어보고 연구 주제는 물론 범위까지 제가 준비하던 논문과 거의 같다는 것을 충격 속에서 확인했습니다.
반미주의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세계 제 1호가 되고 싶었는데 그것을 놓친데다 연구 주제와 범위가 비슷했으니 제가 논문 주제를 바꾸거나 내용을 크게 수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준비한 것 가운데 그 논문에 없는 대목이 있었으니 문학예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구상했던 논문의 한 장(章)에 불과했던 10쪽 짜리 안팎의 ‘문학예술에 나타난 반미주의’를 300쪽 짜리 안팎의 전체 논문으로 뻥튀기한 이유입니다. 거의 1년 동안 밤을 새우며 정치학논문을 쓰면서도 한가롭게 (?) 시, 소설, 노래, 그림, 희곡 등 수백 편의 문학예술 작품에 빠지게 된 배경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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