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간첩' 김낙중

  저는 좀 건방진 편이어서 남들에게 존경한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두 사람을 들겠습니다. 간디와 김낙중. 평화학을 공부하고 평화운동을 해오면서 존경해온 분들이지요. 간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위인이지만 잘못 평가되는 부분이 있고, 김낙중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잘못 알려진 측면이 큽니다.

 먼저 간디는 흔히 '무저항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디가 '무저항' 또는 '소극적 저항'을 통해 인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는 식이지요.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이지 죽음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저항한 사람에게 저항을 하지 않았다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된 표현입니다. 폭력을 저질러야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이요 폭력적이지요. 간디의 독립운동 방식은 '비폭력 저항'이었지 결코 '무저항'이나 '소극적 저항'이 아니었습니다.

 김낙중은 흔히 '간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첩이란 한 국가나 단체의 정보나 비밀을 경쟁적 또는 대립적 관계에 있는 나라나 단체에 몰래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전혀 없으니 '가짜간첩'이거나 '특수간첩'이랄까요. 아무튼 그가 진짜간첩이든 가짜간첩이든 '간첩'이 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휴전협상을 전후하여 이승만 정부가 부추기고 학도호국단이 주도하는 '휴전반대 북진통일' 데모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954년 2월 머리를 빡빡 깎고 하얀 한복 차림으로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 '전쟁반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나홀로 등불시위'를 벌였지요. 다음날 경찰에 체포되어 따귀를 맞으며 심문을 받은 뒤 '미친놈'으로 분류되어 석방되었습니다. 그 무렵엔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자체가 '이적행위'였고, 이적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빨갱이' 아니면 '미친놈'이었는데, 그는 전과가 없고 가족 가운데 북녘과 관련된 사람도 없어서 '빨갱이' 대신 '미친놈'이 되었던 것이지요.

 단독시위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그는 남북 위정자들에게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평화통일을 호소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호소문을 남북 당국에 동시에 전달하기 위해 1954년 9월 판문점을 향하다 연행되어 파주경찰서, 경기도경찰국, 서울치안국 등을 거치며 조사를 받은 뒤 청량리 정신병원에 갇혔습니다. '미친놈'에서 '정신병자'로 격상된 셈이지요.

 정신병원에 며칠 동안 갇혀있다 풀려나온 그는 서울대에 자퇴서를 냈습니다. 경찰들에게 취조받을 때마다 "학생이 공부나 하지 무슨 놈의 통일이냐"는 훈계를 수없이 들으며 학생이라는 신분이 통일운동에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느낀 터에 강의실에서는 민족 문제에 대한 절실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도서관에 파묻혀 통일방안을 만들었습니다. 당장은 남북 양쪽이 무력통일을 주장하지만 언젠가는 평화통일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아래 그를 대비한 평화통일방안을 마련한 것이지요. '통일독립청년 고려공동체 수립안'입니다.

 이를 1955년 2월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서로 제출했는데 며칠 뒤 경무대 (지금의 청와대)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경으로 압송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요. 보름 동안 집요한 심문을 받았지만 별다른 트집거리가 없자 또 다시 '미친놈'이 되어 풀려났습니다. "남침 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 공산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철없이 떠드는 미친놈"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월북을 준비했습니다. 북녘이 정말 "남침 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 파악해보고 싶었고, 북녘 당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남쪽 당국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월북 직전 경찰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북녘 당국의 반응을 확인하고 돌아와 남쪽 당국자들과 다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리고 1955년 6월 자신의 통일방안을 비닐로 감싸 허리에 차고 고무튜브에 몸을 싣고 임진강을 건넜습니다.

 임진강을 건넌 뒤 정신을 잃었는데 깨보니 인민군 병사들이 총을 겨누고 있더랍니다. 그리고 판문군내무서, 개성내무부, 평양내무성 등을 거치며 취조를 받고 '간첩'이 되어 감금되었답니다. 남쪽 경비병들의 감시를 피해 임진강을 건너온 것도 수상한데, 대학중퇴의 24살 젊은이가 만든 통일방안이 몹시 치밀하고 방대했으니 남쪽이나 미제의 철저한 교육을 받은 '한미합동 고용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던 것이지요. 감옥에 갇혀 거짓자백을 하기도 하고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면서 풀려난 뒤 자신의 통일방안에 관해 북녘 인사들과 토론하기도 하고 북녘의 통일정책에 관해 토론하기도 했답니다.

 거의 1년 뒤 휴전선을 건너온 뒤에는 파주 미군부대와 의정부 미군방첩대의 취조를 받고 서울 미군부대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서울경찰국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습니다. 북녘의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된 것이지요. 남북 양쪽에서 '간첩'이 되었으니 '이중간첩'이랄까요.

 이러한 그에게 죄가 있다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성인이고 선각자라 할지라도 몇 년 정도 앞서 가야 이해와 존경심을 가지고 따르는 후배와 제자들이 많이 생겼을 텐데, 수십 년을 앞서 가는 바람에 '정신병자'나 '간첩'이 되어 장기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조국과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 평생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간첩' 김낙중 선생이 평화와 통일에 관한 책을 펴냈습니다. 평화연대 평화연구소에서 출판된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인데,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