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홀아비’ 생활을 시작하며 이른바 ‘기러기 아빠’가 되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찾아 태평양을 건넌 것이지요.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한지 5년쯤 지나 큰아들이 미국에서 중학교를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한국행을 권유했습니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게 되면 미국놈이 되기 쉬운데, 반쪽이라도 한국놈이 되려면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아내는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하여 시민권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자가 되었는데, 아내는 몰라도 아이들은 아빠의 국적을 따라 한국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라도 다니며 한국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 등을 익히고 공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요.
도덕과 인성 교육을 중시한다는 고등학교들을 수소문하여 전화나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한 학교로부터 큰아들의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아내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아이들을 계속 미국에 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홀아비’와 ‘기러기 아빠’ 생활을 지속하게 되었고요.
그러다 2009년 가을 ‘홀아비’ 신세를 면했습니다.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짝꿍 노릇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직 ‘기러기 아빠’ 꼬리표는 완전히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미국에 남아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저에 대해 적지 않은 분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밝혔듯, 첫째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왜 미국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느냐는 것이요, 둘째는 미국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반미주의자’가 왜 가족을 거기에 두고 방학 때마다 들어가느냐는 것이었지요.
이를 해명하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1년 동안 약 10년에 걸친 저의 미국 생활을 시시콜콜한 구석까지 까발렸습니다. 미국에서 반미주의에 관해 공부하게 된 배경도 얘기했고 반미주의의 정의와 유형에 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굳이 한 마디 덧붙인다면, 저는 미국의 호전적이고 일방적인 대외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의 모든 것을 비난하거나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아울러 저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반전주의자요, 친북주의자가 아니라 친평화주의자라는 점을 거듭 밝히며 이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에 관심을 갖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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