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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출판, 이만열 선생과의 대담, 아들 장가들이며
  글쓴이 :      날짜 : 19-10-07 10:11     조회 : 73    
책 출판, 이만열 선생과의 대담, 아들 장가들이며

1. 책 출판
  지난 1학기 통일부 지원으로 원광대학교에서 진행했던 <통일특강> 내용을 통일교육원에서 9월 말 다음과 같이 책으로 펴냈습니다. 각급 교육기관에 배포하기도 하고 서점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답니다. 관심 가져주시겠어요?
- ≪평화의 길, 통일의 꿈≫: 명사 초청 대담 ‘통일공부와 평화여행’
- 우리 시대 최고의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이야기
- 이재봉, 문정인, 정세현, 김진향, 명진, 진천규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9.
2. 이만열 선생과의 대담
  통일부지원 <명사초청 통일대담: 역사와 문학예술을 통해 추구하는 평화와 통일> 세 번째 강좌로, 이번 주엔 국사 편찬위원장과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을 지내신 이만열 선생과 대담을 갖습니다. 큰 관심 갖고 많이 참석해주시겠어요?
- 주제: “항일독립운동과 해방에서 평화와 통일로”
- 대담: 이만열 (상지학원 이사장)
- 진행: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 일시: 2019년 10월 10일 (목) 15:30-17:30
- 장소: 원광대학교 프라임관 컨퍼런스룸
- 참고: 이만열 선생 역저 ≪역사, 중심은 나다≫, 강연장 입구에서 30% 할인판매
3. 아들 장가들이며
  큰아들이 결혼합니다. 제가 아들만 둘 두어서 딸 얻는 게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딸 같은 며느리 보게 된 거죠.
  일시는 10월 19일 (토) 오후 4시 30분. 낮 시간엔 너무 번잡해 쫓기듯 예식 갖는 게 언짢아 한가하고 여유롭게 좀 이른 저녁시간을 택했습니다.
  장소는 익산 웨스턴라이프호텔2층 예식장. 이 때문에 아내와 많이 다투었습니다. 제겐 ‘호텔식장’이 ‘호화결혼’을 뜻하기에 지금까지 몹시 부정적 생각을 가져왔거든요. 20여년 몸담아온 원광대의 명물 자연식물원에서 소박하고 재미있게 아들 결혼식 갖겠다고 오래전부터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잘난 시민운동가 양심이나 허울 좋은 진보교수 명예 때문에 하객들에게 음식 시원찮다고 원망 들으며 아들 결혼 망칠 거냐”는 아내의 독설에 기가 질려 두 손 들고 말았지요.
  큰아들은 1989년 제가 텍사스에서 공부할 때 태어나 ‘택호 (澤鎬)’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놈’이라는 ‘경호 (京鎬)’, 미국에서 태어나 ‘양놈’이란 ‘양호 (洋鎬)’,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같은’ 양놈이란 ‘동호 (同鎬)’ 등 사촌형들의 이름을 잇는 거죠. 작은아들은 ‘또’ 텍사스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우호 (又鎬)’이고요. 미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학교 다닌 두 아들이 영어식 이름이 없다고 불편해하거나 전혀 불만 표하지 않은 게 흐뭇했습니다.
  택호는 제가 석사과정 밟으며 기말보고서 쓸 때 배부른 아내가 밤늦게까지 타이핑해주느라 탈이 생겨 예정보다 3주 일찍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른바 ‘덜반’이었지요. 몸무게도 많이 부족해 열흘간 보육기 (인큐베이터)에 갇혀있었습니다. 보육기에서 나온 뒤에도 심장에 문제 있고 귀에 이상이 생기는 등 여러모로 잘못 태어난 아이 같았습니다.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지요. 그런 아이가 돌 지난 뒤엔 다리통이 어찌나 단단한지 제 친구들이 ‘차범근 다리’ 같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나와 초등학교 다닐 때 꿈이 축구선수였습니다. 3학년 때도 위험한 큰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 저는 눈이 찌그러지고 입이 비뚤어져버리는 병을 얻었고요.
  한국에서 초등학교 4년 마치고 미국 외가로 건너갔는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니기 싫다더군요. 겨우 달래고 힘들게 설득했더니 하는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알았어요. 중학교까지는 다녀줄게요.” 플로리다에서 큰 이모가 살던 뉴욕으로 옮겨 인심 쓰듯 중학교에 ‘다녀주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풋볼선수로 활약하며 최우수선수로 뽑혔지요. 훈련 중 팔이 부러진 뒤엔 잠시 농구선수가 됐습니다. 작은 이모가 있던 조지아로 옮겨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체격이 달리고 키도 더 크지 않아 풋불도 못하고 농구도 포기한 채 체중에 맞춰 서양아이들과 겨룰 수 있는 레슬링 선수로 변신해 지역대회에서 동메달 받았고요.
  “중학교까지는 다녀주겠다”던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더군요. “네가 아무리 좋은 사립대학에 합격해도 아빠가 등록금 마련해줄 능력은 없다. 뒤집어지게 좋은 성적 얻어 전액 장학금 받든지, 아니면 공립대학에 들어가라”고 권했습니다. 조지아공대 (Georgia Tech) 산업공학과에 겨우 들어갔지만 장학금은 놓치지 않으며 공부했습니다.
  2013년 무사히 졸업하며 더 이상 공부는 죽어도 싫다며 대학원 진학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가 물류분석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잘 벌며 2년 뒤엔 집도 장만했습니다. 약 2억짜리 아파트를 30년 할부로 사면서 저에게 3백만원 정도 도움을 요청하기에 후하게 5백만원 보태줬더니 고맙다며 올해 초 저와 아내를 하와이로 초청해 효도관광 시켜주더군요. 대학교 다니며 등록금은 면제받았지만 기숙사비 등 생활비 3천만원 정도 빚지며 졸업했는데 작년까지 5년에 걸쳐 다 갚았답니다. 아직도 마이너스 통장 신세 면치 못하는 가난한 아빠가 아들 빚 갚는데 한 푼도 도와주지 못해 참 미안하다고 울먹였더니 아빠 덕분에 좋은 대학 다녔다며 오히려 고맙다더군요.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미디어 전략가로 일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4-5년 교제해오다 영원히 같이 살자고 약속한 겁니다. 대학동기 5-6명이 적어도 백만원 이상의 비행기표로 한국까지 따라와 축하해준다니 좋은 친구들도 잘 사귀어온 것 같습니다. 이런 제 큰아들을 여러분도 웅원하고 축하해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참고로 10여년 전 큰아들이 고3 레슬링 선수일 때 제가 3-4일간 눈물로 쓴 긴 편지를 아래 덧붙입니다. “사랑하는 큰아들 레슬러 택호에게, 마라토너 아빠가” http://blog.daum.net/pbpm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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